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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에 춤을 출까

by 밀도

강산아 누나가 오늘 하루 동안 받은 전화가 몇 통화일 것 같아?

가끔은 내가 콜센터 직원인가 싶어질 때가….

내년도 신입생 상담 연락이 쏟아지는 시즌이기는 하다지만.

학년초 우리 학생들 통학 코스를 짤 때 혹은 요즘처럼 입학 희망자들이 서류 접수 차 학교를 방문할 때면 매번 볼멘소리를 듣게 돼.

오늘 민원의 시작은 졸업생이었어.

“선생님, 오전에 서류 접수하고 돌아간 그 친구 전화 한 번 해주셔야겠어요.

많이 서운했나 보던데요.”

안 그래도 어렵사리 학생이 되기로 결심한 50세 여자 사람이 일 처리는 잘하고 갔는지 궁금하던 터였어.

“나 울컥했네.

아니 내가 재활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차 타는 것까지는 그래도 옆에서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낯선 장소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혼자 버려두고 가냐고요.”

“속상하셨겠네.

그런데 안내받아서 차 타는 곳까지 나가신 거 아니세요?”

“데려다줬는데, 차 올 때까지 같이 안 기다려주더라고요.”

“담당자가 아마 수업이 있어 그랬을 거예요.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시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아무튼 죄송합니다. 당황스러우셨겠네.

면접 오시는 날엔 활동지원사랑 함께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보통들 보호자 동행해서 오시거든요.”

“네. 그렇게 할게요.”

담당자들이 상황은 알아야 할 것 같았어.

얘기 꺼내자마자,

“그 사람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안내 보행법도 몰라요.”

‘모르니까 배우러 온다는 거 아닌가?’

“그 여자 글쎄 우리한테 신발을 신겨 달리더라. 말이 돼?”

‘신발을 찾아 달라는 거 아니었을까?’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냥 누나 입장에서는 담당자들의 격한 반응이 좀….

강산아, 누나 안마 진상이잖아.

안마사들 힘들어 죽도록 세게 받는 피술자.

우리 학생들 사이에 아주 정평이 났어요.

본인들 힘 기르라고 아픈 것도 꾹 꾹 참는 이 선생님의 깊은 뜻을, 원래 살살 받는 연약한 여인인데 억지로 센 척하느라 허세를 좀 부렸음을.

뭐 믿거나 말거나.

또 나를 진상으로 여길까 걱정스러운 곳은 바로 도서관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대체자료 제작을 신청해 대니까.

신간이 나오면 당장에 읽고 싶은 갈증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을 어쩌리.

오늘은 누나 학교 교사들이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날’로 함께 모여 연수를 받는 시간이 있었어.

다름 아닌 누나가 애용하는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및 이용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단다.

비장애인 선생님들 앞에는 그야말로 널려 있는 학습 도서나 수업 자료들이 우리 학생들 이용 가능한 형태로 어떻게 제작이 되는지, 얼마나 제작이 되어 있는지, 어떻게 이용하고 학생 안내 및 지도를 해야 하는지 등등 상세한 설명을 들은 거야.

국립중앙도서관 건물 내에 작은 공간으로 장애인 도서관이 있다는구나.

시각장애뿐 아니라 청각·지체 등 전 장애 영역을 대상으로 한 도서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는 국가 기관인데 글쎄 독립된 건물 갖는 것이 소원 이래.

누나도 서초에 있는 그 삐까뻔쩍한 건물 가 본 적 있었어.

교과서 지필 작업할 때 대면 낭독 서비스 이용하려고.

키야, 서울 맹인들은 얼마나 좋을꼬.

사업 소개 차 먼 길 오신 사무관님이 누나 학교 너무 예쁘다고 막 부러워하시더라.

나는 서울 시민이요,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분이 더 부러운데….

내년도에는 또 어떤 학생들과 부댓기게 될는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볼멘소리 웃어넘기려니, 오늘따라 몸도 맘도 후달리네.

애라, 맥주나 한 캔 먹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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