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넘어 귀가한 따님 뭐라도 먹여야지 싶어서 겉빠속촉한 누룽지를 만들었어.
스피커폰으로 독서토론 하면서 손으로는 누룽지 뒤집고, 샤인머스캣 씻고.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다는 것이 아주 드리 부어 버리고.
강산이 오늘 구름 위에 누워서 느긋하게 누나 실수 퍼레이드 구경하는 재미 쏠쏠했어?
내가 나한테 놀란다 야.
아니 연휴 동안 연재 원고 마감을 했으면 그걸 보내야 마땅하지 뭐 더 좋은 꼴을 보고 싶어 쥐고 있냐고.
아무튼 번번이 이놈의 미련이 문제다.
분명히 개운한 기분으로 마감을 쳤단 말이다.
원고 쓰면 며칠 노트북에서 숙성을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건 좀….
파일을 클라우드에 넣지도 않고 출근을 해버리는 바람에 아침부터 골머리를 앓은 거야.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갔다 와야 하나?
참아 내일 보낸다는 말은 못 하겠는데….
엄마도 차가 없으실 테고.
장애인 심부름센터에 접수하면 퇴근 전에 해결이 되긴 하려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와중에 제출해야 할 서류는 왜 이렇게 많은지….
다행히 2시 심부름 예약에 성공했어.
집에 계신 엄마께 전화를 걸어 시간 맞춰서 노트북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지.
흐미 그러고 났는데, 카드는커녕 현금 한 푼이 없는 거야.
다시 전화해서 차비까지 해결해 달라고.
암만 욕먹었지.
“선생님 11월 원고 보내셨을까요?”
도서관 담당자에게 톡은 오지.
돌아서면 시작종 치지.
돈은 없지.
몸은 메어 있지.
약속은 지켜야겠지.
아이고, 머리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에요.
그 파일은 왜 두고 출근을 해 가지고 이 사달을 만들어.
카드 지갑도 없어 빈털터리 신세.
자알 한다.
그래도 태권도하고 오신 따님이 누룽지를 달게 먹어줘서 기분이 가 좋았다는.
그분 샤워하시고 뭐 어영부영하다 보니 금세 11시가 넘더라고.
부랴부랴 불 끄고 아이 침대로 몰아넣고 자장가를 틀고 취침 모드에 돌입했는데, 소녀의 다급한 외침.
“끼약, 미쳤다. 내일 독서 카드 내야 하는데….
엄마, 내일 나 6시에 깨워줘야 해.”
‘독서를 해야 카드를 쓰지.’
“여보게, 벼락치기가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어요.”
“아, 아무튼 내일 일찍 깨워줘야 돼.”
깜빡 쟁이 어머니 그저 유구무언이 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