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콜택시가 아닌 일반 택시를 탈 때면 여지없이 불안하다.
내가 시각장애인임을 알고 보이는 날 것의 반응들이 매우 다양하기도 하지만, 단 몇 미터 차이어도 내가 생각한 하차 위치가 아닐 경우 방향을 잡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날은 장애인 콜택시 대기가 두 시간이 넘어 어쩔 수 없었다.
서울에서 동생과 즐겁게 뮤지컬을 관람하고 내려온 참이었다.
코레일 직원의 도움을 받아 기차에서 내려 역 광장에 정차 중인 택시에 올라탔다.
목적지를 힘주어 말했고, 차가 출발했다.
기사님 대답이 없어 운전하는 이가 여자인지 아닌지, 젊은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불안하여 음성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친정어머니께 마중을 부탁했다.
흰 지팡이도 들고 있었으니, 승차를 철도 유니폼 입은 직원이 도와줬으니, 보호자와 통화하는 소리도 듣고 있었으니 운전하고 있는 이가 내 상황을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목소리 없이 차를 몰던 기사는 다소 거친 느낌으로 사이드를 당겼고, 나는 다시 한번 힘주어 물었다.
“여기가 A아파트 정문 맞지요?”
“네.”
희미하게 들려온 대답 소리에 떠밀려 내리자마자 차는 떠나 버렸다.
대로변인 듯 가까이에서 달리는 차량 소리만 나의 귓전을 때렸다.
엄마가 나를 불러야 맞는데, 엄마는 없고, 어딘가 공기가 낯설었다.
“엄마, 나 지금 내렸는데.”
“어디서 내렸어. 엄마가 진작부터 나와 있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정문 앞이냐고 확인하고 내렸는데. 영상 통화할게. 끊어봐.”
그때부터 엄마 목소리는 떨려왔고, 내가 비치는 화면만으로는 내 위치를 알 수 없어진 엄마가 주변 아파트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흰 지팡이를 들고 서성이던 내가 누구든 붙들고 현 위치를 파악하여 연락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것 같았지만, “저기요.” 몇 번을 불러봐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휴대폰 배터리는 바닥인데, 도대체 나를 어디다 내려놓고 사라진 것인지 속이 터졌다.
‘ 내가 이럴까 봐 일부러 확인하고 내린 건데….’
지팡이로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몇 걸음 움직였다.
쓰레기 정리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향해 용기 내어 소리쳤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제가 택시를 잘못 내린 것 같아 여기 위치를 좀 알고 싶은데…”
분명히 무슨 짐 정리를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데, 답이 없다.
“저기요.”
한참만에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어디 찾으시는 거야?”
“제가 택시를 잘 못 내려서요. 여기가 무슨 아파트인가요?”
“아, 여기 B아파트 정문이여.”
“감사합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차를 운전하여 달려왔다.
30분 넘게 밖에서 뛰어다니던 엄마는 화장실도 못 가셨다며 자초지종을 물었고, 어떤 택시인지, 목적지는 잘 말한 건지 울분을 토했다.
서울에서 헤어져 언니의 귀가 문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동생은 일련의 사태를 전해 듣고 통곡했다.
식구들 성화에 못 이겨 카드 결제 내역을 추적했다.
그분이 택시 운전을 계속하시는 한 같은 실수는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것은 기사에게나 잠재적 승객에게나 답이 아닐 것 같아서 택시 회사를 알아냈다.
번번이 언니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동생이 그 기사와 통화한 녹취 내용은 이랬다.
“안녕하세요. 일요일 저녁 시각장애인 태우셨던 분 맞으시죠?
저 그분 가족입니다. 그날 정확히 어디에 내려주신 건가요?”
“아. B아파트서 내려줬지요.”
“여보세요. 분명히 저희는 A 아파트 정문이라고 말했고, 내리기 전에도 재차 확인했습니다.”
“아이고, 그러면 내가 잘못 들었나 보지요. 죄송합니다.”
“기사님, 그렇게 엉뚱한 곳에 내려주셨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세요. 가족들은 정말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아세요?”
“그러니까. 그런 분들 더 잘해 드려야 하는데, 내가 뭐 그 사람을 무시해서 그랬겠어요?”
“기사님, 실내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78세입니다. 난 그 양반이 시각장애인인 줄 몰랐어. 알았으면 그랬겠어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는 분명히 A 아파트 정문이라고 말했다. 인사는커녕 운전도 거칠기 짝이 없더니 사과 또한 엉뚱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은 뭐고 무시는 또 뭐람.’
오랫동안 택시를 운행하신 분이라면 승객이 말하는 목적지 정도는 정확히 듣고, 적어도 목소리 정도는 들리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상식일 터다.
우리 가족의 겨강된 목소리와는 다르게 마지못한 사과를 쥐어짜는 어르신 음성에는 택시 운전사로서의 전문성도 고객에 대한 미안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실수였다고,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프로다운 한 마디면 족했을 것을.’
그날 이후 내 휴대폰에는 위치추적앱이 깔렸다.
앞으로 내게 비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