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보충수업이 있어 퇴근이 늦다. 본인은 공부가 체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중학교 여학생 국어 수업이다. 가까운 학원에 다닐 수 없는 딱한 녀석 형편이 나의 학창 시절 그것과 닮았다.
그나마 내가 다녔던 맹학교는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인근 명문대 학생들의 개인 지도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 학교는 대중교통수단도 여의치 않은 시골 아닌가.
일반학교 중3학년들이 푸는 문제지를 점자 형태로 만들고, 다양한 지문과 문형을 익힐 수 있도록 심화 학습에 돌입했다. 점자가 느린 학생을 대신하여 문제와 지문을 반복해서 읽어주다 보니 그 옛날 나의 국어 공부를 도맡아 지도해 줬던 이대 언니가 생각났다.
“싸부, 올해부터 중3 보충하고 있는데, 꼬박 100분을 읽어주려니, 이것도 쉽지가 않네요.
수당 받으면서, 물 마시면서 해도 힘든 것을 싸부는 어찌 물 한 모금 안 먹고 3년이나, 심지어 순수 봉사로 하셨나이까?”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그땐 젊었잖니.”
“싸부에게 받은 선한 영향력, 저도 학생들에게 돌려주겠나이다.”
“행복해지네.”
김춘수 시인이 쓴 “꽃”과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요, 의미가 되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영특한 학생이 정답을 곧잘 찾으니, 문제풀이하는 선생도 신바람이 났다.
미래는 우리 동네 주민이다. 활동지원을 받아 통학하며, 5학년 때 전학 왔다. 공교롭게도 내 병명과 같은 녹내장 진단을 받고, 열한 살 무렵 빛도 볼 수 없는 몸이 됐다.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미래가 하교하는 모습을 본 활동지원사가 말했다.
“학생도 전혀 안 보이나 봐요. 얼굴이 너무 예쁘게 생겼어.”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커서 작가 되고 싶대요.
미래도 미래지만, 저 녀석 엄마 마음 생각하면. 멀쩡하게 일반학교 다니다가…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요.”
“그게 유주 할머니 마음 아니셨겠어요?..”
미래 어머니는 나와 동년배다. 학부모 회의 석상에서 의견 개진하는 목소리를 종종 들었고, 미래가 들려주는 엄마와의 에피소드도 푸짐했다.
“우리 엄마는 제가 설거지한다고 해도 못하게 해요.
라면 한 번도 안 끓여 봤어요.”
‘불 만지는 것은 나라도 못 시키겠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저릴 텐데…
우리 집은 나라서 다행이구나. 자식이 불편한 몸으로 사는 것을 지켜보는 고통보다는 차라리 내가 눈 감고 사는 쪽이 견디기는 수월하겠다.’
한 때는 우리 학부모들을 볼 때마다 유주를 떠올렸다. 보호자로서 내가 메꾸지 못하는 돌봄이요, 학부모 활동에 질척거리는 미련이 남았다. 어디까지나 자유 의지로 다둥이를 출산하는 동료 교사들이 부러웠고, 날렵하게 아이들을 픽드랍하는 엄마 기동력, 그것은 훔쳐서라도 가지고 싶었다.
한편, 맹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하게 물심양면 성장하고 있는 유주를 체감할 때면 문득문득 고마웠다.
“밥 먹어라. 공부해라. 책 읽어라.”
잔소리 피해 혼자서 호로록 1일 1라면을 끓여 먹어도, 주말마다 가방 싸 들고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에 숨어들어도, 쉐도우며 컨실러로 예쁜 얼굴에 안 해도 좋을 화장을 하고 다녀도 마음껏 건강한 유주 사춘기가 일면 눈부신 거다.
오래도록 흠모하던 ‘잔나비’ 콘서트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오후 5시 공연이었으니 바쁘게 내려와도 10시가 넘었다. 장애인콜로 안전하게 귀가하겠노라 큰소리치고 나선 걸음이었건만, 못내 불안하셨던 친정어머니는 캄캄한 그 밤, 40분을 걸어서 기차역에 나와 계셨다.
끝까지 나는 이기적인 딸이려나보다. 칠순 넘은 엄마가 늦은 밤 마중을 나와 계셔도, 날마다 손주 밥을 지어 먹이셔도 평생토록 당신 애간장을 끓이고 볶고 녹여 놓고도 고장 난 내 눈에는 오직 유주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