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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일 것

by 밀도

“지금 밀도 선생님이 만진 거기, 거기가 제일 아파요.”

“오른팔 한 번 올려보실게요. 괜찮으세요?”

“아아! 이 이상은 힘들어요.”

오른쪽 날개뼈에 붙어서 팔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근육에 문제가 확연했다.

어깨 뒤쪽으로 극하근 조직에 두툼한 띠가 만져지면서 울퉁불퉁 긴장도가 높다.

‘한두 번 시술로 해결될 근육이 아니건만….

부유한 형편에 남 부러울 것 없는 지위에 번듯하게 키워 놓은 자녀에 탄탄한 노후까지 뭐가 걱정이라고 어깨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임상실 방문자 99%는 어깨가 아프다.

두께와 상관없이 경직된 관절에는 눅진한 피로가 걸려 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이요, 규칙적으로 운동을 챙겨하지 않는 이들의 자세는 한결같이 앞으로 구부정하다. 이름하여 ‘둥근 어깨’.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문제의 체형을 양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시점에서 맹인 안마사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거다.

‘현대인들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는 한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겠구나.’

똑똑한 AI가 인간의 업무 영역을 그야말로 쿨하게 관통하는 이 시대에 그 범위와 기능은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 분야에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가공된 편리함이 자연을 선망하는 나로서는 마냥 반갑지만 않다.

특히 ‘치유’라 일컬어지는 몸과 마음 회복에 있어 인간의 ‘손’을 한낫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학교 임상실습실에 방문하는 어머님들 대부분이 ‘돌봄’에 몸을 받쳤다.

어머니를 넘어 할머니의 이름으로 날것의 사랑을 퍼부어 주시느라 어깨며 허리가 다 헐어도 그 사랑 여념이 없다.

내 손끝에 감지되는 옹이 진 근육은 그녀 혹은 그들 삶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재미있는 것은 경제적인 부가 몸들의 근육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통증 앞에는 운동하는 몸과 운동하지 않는 몸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곱디고운 근육에는 힘이 없으되 닭가슴살로 키운 근육에는 활성산소 또한 팽창한다.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을 겸하며 근육 컨디션을 체크하는 사람은 몸의 탈력뿐 아니라 영혼에도 생기가 넘치기 마련.

매일 꾸준히 땀 흘리며 스트레칭하는 이들의 몸은 유연할 수밖에.

중요한 것은 순전히 능동적인 단련이 아니고서는 온전한 내 근력을 기를 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한 땀 한 땀 구슬땀을 흘리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지 아니한가.

안마사 손의 감각 또한 마찬가지여서 얼마나 많은 몸을 만져 보느냐에 따라 미세하게 촉이 죽고 산다.

어쩌면 공평한 처사일지 모르겠다.

남녀노소를 떠나 오롯이 혼자 힘으로 내 근육을 제어하는 그 시간에 비례하여 몸에는 탈력이 붙는다.

건재한 근세포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젊음을 저장한다.

활력과 탈력으로 충전된 생이라면….

‘발바닥’부터 시작이다.

몸 안에서 뭉근히 타오르는 ‘온기’는 불씨가 되어 가슴속 응어리를 녹인다.

정체되고 적체되어 산소 통로를 막는 피로 물질을 씻어낼 길 또한 운동뿐임을 아픈 몸들에게 설파하며 오늘도 나는 헬스장으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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