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는 BTS 팬이다. 아빠차 찬스를 이용해 스쿨버스로 등교하는 친구들보다 일찍 학교에 나온다. 이른 출근을 해도 선호는 이미 2층 복도에서 BTS 음악에 심취해 있다. 때로는 춤추고 때로는 노래 부른다. 이료관 건물에 들어서면 귀에 익은 BTS 음악 소리가 흥겨운 아침 인사다.
‘안마’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어느 시각장애인 독자님께 연락을 받았다. 우리의 전통안마 효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도서 출간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공동 집필 혹은 내 책에 실린 꼭지를 인용하고 싶다는 용건이었다. 나의 첫 책 『점자로 쓴 다이어리』를 세 번이나 읽었다며, 작품 제목을 술술 읊었다.
시각장애인도서관에 내 책이 공개된 후 지인들에게 종종 문의를 받았다. 지극히 사적인 내적 사유를 가까운 지인들이 낱낱이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막연히 사적 관계없는 독자를 상상했을까?
유원장님과 약속을 잡았다. 그분도 나도 전맹으로 동행이 필요했다. 쉽지 않은 걸음이었다. 낯선 이와의 만남을 즐기지 않았으나 호기심이 동했다. 당신이 직접 개발한 점자 필기도구도 가지고 오신다고 했다.
두 맹인의 순조로운 만남을 위해 도우미를 섭외했다. 마침 학생들 점자 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동료 황이 흔쾌히 수락했다. 퇴근을 준비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선생님, 저 왔어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이제 나가볼까?”
근데 황의 목소리가 어딘지 달랐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이상한데.”
“저 선호한테 맞았어요. 얼굴이랑 가슴이랑…”
황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당황스러웠다.
“괜찮아요?”
“아까는 입술 찢어져서 피나고, 가슴도 엄청 아프고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괜히 선생님께 얘기하니까 또 눈물이 나요.”
전후 사정은 이랬다. 선호가 종례 시간에 제 멋대로 행동했고, 그것을 저지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어 졌고, 교실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지도하던 중에 흥분한 선호가 담임선생님을 때렸다. 고등학교 남학생의 강인한 완력으로 생전 처음 얼굴과 가슴을 가격 당했으니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도저히 밥 먹을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손님은 도착할 시간이었다. 난감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유원장과 마주 앉았다. 어색한 공기 속에 식사를 주문했다. 고맙게도 황이 돈가스 접시를 비웠다. 유원장이 개발한 점자 도구에도 관심을 보이며 예리하게 질문했다. 숫기 없는 나였지만 동생 같은 황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고 웃고 말했다.
몇 가지 사안을 정리하고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입안 상처며 가슴 통증에도 불구하고 약속 지키느라 꾸역꾸역 식사하고 헤어진 동료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여보세요. 몸 좀 어때요? 식사할 상황이 아닌데 억지로 먹느라고 고생했지요? 미안해요. 기분은 좀 괜찮아요?”
“네. 선생님 자꾸 눈물이 나요. 선호 평소에는 엄청 귀엽거든요. 그런데 오늘은…”“특수교사 신고식 톡톡히 하네. 우리 학생들 다 아픈 친구들이잖아요? 애들 고집부리면 나도 정말 힘들더라고. 우선은 진정시키고 거리두기 하면서 천천히 행동수정하는 것이 원칙이긴 한데,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아요.”
착한 황은 연신 괜찮다고 말했다. 절대 괜찮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랬다.
20대임에도 드물게 안마와 침을 좋아하는 그녀는 종종 임상실에 온다. 허리며 다리며 아픈 곳을 만져주면 정말이지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한다. 그 모습에 내 기분까지 덩달아 유쾌해진다.
며칠 후 황이 침을 청했다. 여느 때처럼 밝고 명랑했다.
“선생님, 저 어제 승민이한테 여기 물렸어요. 아직 자국 남아 있는데 한 번 만져 보실래요?”
새끼손가락을 만져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심상하다.
“고생이다. 그나저나 그날 이후로 선호는 어때요? 잘못했다고는 해?”
“아니요. 그냥 평소랑 똑같아요.”
예기치 못하게 부상당한 사람 도움으로 마음 무겁게 식사한 이튿날 출근길, 선호의 흥겨운 BTS 인사가 어제와 다르게 들려온 까닭은 특수교사로서의 내 소양이 부족해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