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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제발 절여서

by 밀도

유주가 말했어.

“엄마, 오늘 내가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간다고 했거든. 근데 국어 선생님이 내 얼굴 창백하다면서 어디 아프냐고 하시는 거야. 혹시 비염 있냐고.”

유주 코가 또 말썽이구나.

옷이라도 따습게 입고 다니면 좋으련만, 치마 단은 접고, 덥다며 웃옷도 잘 안 챙기니…..

하굣길로 영수 학원에 갔다가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8시 태권도까지.

바쁘기도 하지.

콧물이 계속 나오니 수업 시간에 얼마나 불편하겠어.

국어선생님 당신도 비염 때문에 학교 다닐 때 고생했다 하시며 친절하게 화장실을 허락해 주셨대.

‘아!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 하는 학생 장난으로라도 핀잔주면 안 되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한 번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겠구나.’

3월 초 등교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엄마, 나 중학교 수업이 왜 45분인지 알았어. 선생님들이 거의 다 5분 늦게 오시더라고.”

‘헉, 바로 어제 직원조회 시간에 우리 교장선생님 당부 말씀이었는데… 시작종은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지 선생님들 교무실 출발하라는 신호가 아니라고.’

엄마가 속으로 뜨끔한 것을 눈치챘을까?

5교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언니야에게,

“다음부터는 쉬는 시간에 가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포부터 놓았던 엄마를 예감했나?

지은 죄가 많으니, 무시로 발이 절여온다.

무궁화 열차 좌석 밑바닥에 엎드려 세 시간이 넘도록 부동자세였던 강산이가 앞다리를 길게 펴며 기지개 켰던 것처럼 누나도 팔다리어깨허리 쭉 쭉 뻗어 스트레칭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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