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했어야 할까

by 밀도


토요일 아침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소규모 개인 병원이라 의사도 간호사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네. 1시 30분까지는 오셔야 해요. 지금 오시면 한 시간 넘게 대기하셔야 하고요.”

귀가 어두운 어르신께 더디게 수납 절차를 안내하는 사이사이 수화기를 들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간호사 목소리가 한결같이 친절했다.

드디어 딸아이 이름이 호명됐다. 비염으로 3일씩 두 차례나 항생제를 먹였어도 별 차도가 없었다. 축농증으로 병세가 발전할까 염려했더니, 의사는 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다.

좁은 병원 안에 호흡기 치료실이 있고 그 안에 CT 촬영 장비가 있었다.

딸과 둘이 내원한 참이라 아이가 보호자인 나를 안내했다.

아픈 검사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비좁은 검사실 한 구석에 서 있는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어머니 나가 계셔도 돼요.”

“아 네. 제가 시각장애가 있어서요.”

더듬더듬 벽을 찾아 그 공간을 벗어났다. 검사실 앞에 서 있자니 간호사 목소리가 들렸다.

“얘, 가만히 있어야지. 왜 그렇게 긴장하니.”

이미 그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몇 차례 검사실 문이 닫혔다 열렸다 했다. 잠시 후 풀 죽은 아이가 나왔다.

“까치발 하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기가 너무 힘들어.”

검사 장비가 높았던 모양이었다.

“선생님한테 높다고 말하지 그랬어.”

“말했는데 잘 안 들렸나 봐.”

‘엄마가 볼 수 있었으면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잡아줬을 텐데.’

다시 진료실에 앉았다. 젊은 의사는 당황하며 사진이 너무 흔들렸다고 말했다.

“네가 가만히 안 있어서 사진이 흔들렸잖아.”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수준인 것이 틀림없었다.

거침없이 아이를 탓하는 의료진 앞에 서 있자니, 못내 부화가 치밀었다.

“까치발 하고 있느라고 힘들었대요.”

내가 힘주어 말했다.

그제야 의사는 아이를 보고 고생했다며, 간호사에게 몇 마디 당부를 늘어놓았다.

“사진이 흔들리기는 했는”데 코안에 염증은 그렇게 많은 거 같지 않습니다. 우선 약 3일 치 드릴 테니 먹고 경과 지켜보게요.”

찜찜했지만 축농증은 아니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의사가 딸아이 코를 처치하며 말했다.

“코 안에 있는 거 빼는 거니까 가만히 있어야 해. 다음에는 혼자 나와도 되고.”

목에 약을 바른다며 아이에게 입 벌리라고 하기에, 곁에 서 있던 내가 말했다.

“아아, 소리 내봐.”

내 말이 끝나자마자 냉랭한 간호사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소리 안 내도 돼.”

‘저 사람들 눈에는 내가 쓸데없어 보이나 보구나!’

그날 병원에서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검사 다시 해 달라고, 왜 아무 잘못 없는 아이를 탓하냐고, 성인도 아닌 환자를 검사하면서 키에 맞도록 장비 조작하는 것은 기본 아니냐고…’

10시부터 14시까지 꼬박 기다리고 진료 봐서 전과 동일한 약을 처방받았다.

개운치 않은 검사 비용도 군말 없이 결제했다.

‘왜 난 이렇게 바보 같을까? 주변 분위기에 압도되어 멀쩡한 내 생각, 기분 입밖에 내지 못하고 번번이 소처럼 되새김질만 한다.’

보호자로서 응당 요구해야 맞았다. 딸아이에게 성숙한 어른의 의사 표현 본보기는커녕 미진하기 짝이 없는 대처 능력을 들킨 것 같아 속상했다.

번번이 주변 공기와 이목에 의해 생성 혹은 소멸됐다.

내 안에 나를 지켜줄 이는 단 한 사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았어도 부서지고 흩어졌다. 그 파편들이 까맣게 굳어 문장이 됐다.

눈감고 살다 보면 좋은 이웃을, 착한 척하는 사람을, 진짜 나쁜 놈을 종종 접한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에 압도되지 않는 법을 내 혀가 알았으면 좋겠다.

짧지만 송곳 같은 한 마디로 그들의 근거 없는 오만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눈감은 몸이 벼슬일 수 없고, 눈 밝은 몸이 갑질하지 않는 그런 관계는 끝끝내 욕심일까?

우리 모녀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

“유주야, 엄마 이것 좀 봐줘.”

“나 지금 바빠.”

“야, 심청이는 아버지 위해서 인당수에도…”

“뭐래. 지금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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