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May 21. 2024

스피드와 타이밍


형 손잡고 청송 주왕산에 올랐어.

용추폭포까지는 전에도 한 번 가 본 코스.

내 체력은 딱 거기까지였는데 형이 1.2KM를 더 고집한 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용연폭포를 찍었어.

유주, 잘 걷더라.

처음에는 밍기적거리며 우리 뒤에 따라왔거든.

“돌아가자, 올라가면 얼마 줄 거냐, 내려와서 빙수 먹자, 아니 와플 대학 가자.”

갈수록 엄마 버벅거리고, 딸 감잡아 앞서 가고….

청명한 봄날, 등산객들이 많았어.

가족 단위도 있고 산악회 회원들도 많더라고.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웬 체력이 그렇게 좋으신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내공인 거야.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에 부치는데, 형은 끄떡도 없더라.

거북이 달고 등산하는 토끼 속 좀 터지셨겠다.

울창한 숲 속 풍경 그림이 궁금한 내가 물었어.

“유주야, 용추와 용연폭포 뭐가 달라?”

“어, 용추는 한 줄기고, 용연은 두 줄기야. “

간결도 하여라.

“유주야, 엄마 좀 잡고 가. 엄마가 아빠 너무 빠르대.”

“나도 빠른데.”

형이 덧붙였어.

“엄마 발목 다치면 큰일 난다. 조심해서 앞에 잘 봐.”

내가 말했지.

“괜찮아. 유주가 엎고 가면 되지.”

“예, 예예예? 아! 아빠가 조심하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부녀는 천천히 가는 게 더 힘들다고 했어.

스피드와 타이밍!

인생만사 이 두 가지가 딱 들어맞을 수 있다면….

느려터진 이 몸을 무던히도 기다려주는 내 사랑들이로세.

  돌아오는 길, 시아버님 잠들어 계시는 하늘공원에 들렀어.

납골함 앞에 유주 성적을 고했지.

“할아버지 깜짝 놀라셔서 유주 꿈에 나타나 다음 시험 답안 불러주실지도 몰라. 1번에 3, 2번에 5… 잘 받아 적어레이.”

잘난 부녀 대화, 웃플 뿐이고.

다음 코스는 시어머님과의 식사.

어버이날 때 못 찾아뵈었잖아.

어머님 추천, 코다리찜을 먹었어.

우리 차로 어머님 모시고 이렇게 외식한 것은 처음이었거든.

작년 12월에 아버님 떠나시고, 혼자 노인 일자리 하셔.

트바로티 김호중 좋아하신다며 음주 뺑소니 소식을 전해주셨어.

형이 왜 김호중이 좋으시냐고 물었더니,

“어렵게 살았잖아.”

선량하기 그지없는 보통 할머님이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절에 맞는 옷을 입읍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