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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n 03. 2024

치과는 이제 그만

40분 조퇴하여 치과에 갔어.

입 벌리고 앞니 치료하는데 꼬박 한 시간이 넘게 걸리더라.

그런데 환부 주변으로 무슨 보철을 걸어서 비닐 같은 것을 대고 치료를 하니까 훨씬 수월한 거야.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갈 일도 없고 침 뺀다고 기계 계속 대고 있을 일도 없고 완전 신세계더라니까.

의사 선생님 마취 주사 솜씨도 가히 예술이었어.

목소리도 엄청 차분하시니 환자 입장에서 절로 안정감이 느껴지는 거야.

순식간에 25만 원이 날아갔네.

다행히 치아를 한 개만 손보면 되어 그 금액으로 끝났어.

강산이랑 여기 처음 와서 진짜 아는 사람 1도 없을 시절에 만난 간호사 선생님들이라서 그냥 특별한 친분 없어도 반갑고 정겨워.

새삼스럽게 여기서 무려 20년을 버텼구나 싶어 지면서 그 세월이 까마득하게 스쳐가는 거야.

강산이 없었으면 누나 정착은커녕 제대로 사회생활이나 했을까 몰라.

네가 있어서 퇴근길에 피아노 학원 다니고, 산책하고 새벽기도도 갈 수 있었잖아.

누나 기간제할 때 학생 독창 대회 반주 맡고 벌벌 떨면서 남몰래 청심환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합창 반주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더라니까.

그땐 토요일 근무에 일요일 일직도 있었는데.

KTX도 없어서 무궁화 열차 타고 놀토만 기다렸다가 서울 집에 올라가고.

강산이 고생 많았다.

열차 좌석 밑에 엎드려서 세 시간 반이나 없는 듯 부동자세로 얼마나 힘들었니.

강산이 생애 처음과 끝을 함께 해주신 퍼피워커 교수님 가족은 모두 건강하시겠지?

형아들도 미국에서 성공하고.

누나가 연락 자주 드리고 해야 하는데….

프로페셔널의 극치 장교수님과 사부님의 세련된 삶이 누나로서는 꼭 영화 같아.

너를 통해 맺어진 다시없을 아름다운 인연이구나.

이제 치과는 방학하면 가서 유주랑 정기 검진만 하면 돼.

스케일링도 한 번 해야지.

우리 강산이는 양치하는 거 엄청 좋아했었잖아.

치약을 어찌나 달게 삼켰는지….

소복하게 쌓인 사료 그릇에서 누나가 몰래 섞어둔 알약 조각만 귀신처럼 남기고.

못 말리게 영특한 녀석!

누나도 강산이처럼 신명 나게 양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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