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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n 03. 2024

안 하고 싶어도

 “조그라미야, 금요일이다. 난 오늘 학생모집 출장. 진짜 내 적성 아님.”

“하하하, 그거 딱 내 적성인데, 역시 우린 붙어있어야 할 팔자. 파이팅!”

 2교시 마치고 인근 지역 주민센터로 학생 모집 홍보 출장을 나갔어.

근로지원샘이 계셔서 이동은 물론 화장실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복된 여건이 됐지.

빠듯한 일정,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를 나섰어.

사회생활이라는 것.

하기 싫은 일도 웃는 낯으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

진작부터 지방 대학들은 교수들이 직접 학생 유치를 위해 출장 다니는 것이 다반사거든.

누나 학교 경우는 살짝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 학교를 몰라서 못 오는 시각장애인이 있으면 안 되니까.

장애 판정받고 암울하게 칩거하는 청장년들에게 정보가 가 닿을 수 있도록 담당 공무원을 만나는 거야.

장애인복지 담당자들이 대부분 시각장애 특수학교 교육과정을 모르거든.

사실 알 도리가 없지.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중도실명한 성인들이 직업과 재활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이 있다는 걸 어찌 알겠어.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어른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모아 하는 말이야.

“진작에 알았으면 내 인생 더 빨리 달라졌을 텐데…”

성인 학생들 중에는 부모가 많아.

엄마 학생은 안마 실습하면서 받은 음료와 간식을 아이들 갖다 준다고 챙겨.

아빠 학생은 자녀들에게 다시 용돈 줄 수 있는 가장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정확히 17명 담당자를 대면했어.

누나 낯가림 심하잖아.

몇 년 전에 처음 출장 나갔을 때는 정말 진땀이 나더라고.

그런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것도 이력이 붙나 봐.

명찰을 목에 걸고서 꼭 전달해야 할 키워드 네 개를 머릿속에 입력한 다음 간결하게 설명했어.

‘취업’, ‘안마사자격증’, ‘통학버스’, ‘무상교육’

그래도 담당자들이 제법 귀 기울여 듣더라고.

종종 질문도 받았어.

적어도 영혼 없는 일방통행 아닌 것에 만족.

예기치 않게 시각장애인이 되어 절망하는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어진 업무를 부지런히 수행했네.

근로지원샘 계속 운전하고 이 맹인 안내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친절한 목소리가 한결같으시더라.

누나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품갑’이셔.

나로서는 성의를 다해 뿌린 씨앗이야.

부디 의미 있는 열매 맺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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