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상실의시대 (노르웨이숲)

퇴근길 책 읽기

by 하랑


먹먹하다.


상실의 시대를 단숨에 다 읽은 후 마음에 남았던 것은 공허힘보다는 먹먹함이었다.

충분히 희망과 청춘을 이야기할 수 있었음에도, 이 책에 대한 후기를 쓰려고 하니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첫 단어가 ‘먹먹함’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역설이다.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을 그리지만,

젊은이의 나이 듦과 세상 알아감을 서술하지만,

이 책의 전반을 흐르는 주제는 일관되게 “죽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이 책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빋아들여야 하는 청춘의 방황과 마음가짐“을 1인칭의 화법임에도 불구하고 1.5인칭으로 반 발자국 정도 떨어져 이야기를 풀어간다.

마치 3인칭 시점과 절묘하게 섞인듯한 느낌으로.


그렇지 않고서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담담하게 풀어낼 수 없기에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죽음이란 개인에겐 한없이 슬프고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절망적이기 때문에.


타자의, 특히 가까운 이의 죽음과 사라짐은 너무나도 슬픈 동시에 우리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깨우쳐준다.

(나이를 들어버린 지금도 그렇지만) 죽음은 그림자처럼 우리 삶을 항상 따라다닌다는 사실은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사실이기에 죽음의 일상성은 특히 청년기에는 더욱 절망적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리도 불가피한 화법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 주제성 때문에 이 “개인주의적”인 작품은 “범용성”을 갖는다. 반쯤은 필연적으로.


동시에 이 작품은 하루키라는 작가 개인에게는 한없이 개인적이다.

이는 먼 북소리를 10번 넘게 읽고, 상실의 시대를 읽기 전 반딧불이를 읽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부분인데, 상실의시대의 많은 부분은 무라카미하루키라는

개인을 상당 부분 투영했다고 본다.


귀가 찢어진 고양이에 대한 묘사는 먼북소리의 스펫체스섬과 미코노스의 고양이들을 떠오르게 하며, 등장인물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떠한 하루키의 음악 취향을 떠올린다.


마치 영국의 mode족, 서구의 여피족 같은 삶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동경했던 하루키 답게, 그 시절 지적 우월함을 쿨재즈 아티스트들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로 표현하고, 동시에 취향적 까다로움을 레이코가 기타로 연주하는 클래식으로 표현한다. 다소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바흐의 푸가를 기타로 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중 핵심인물인 미도리는, 결국 주인공의 탈출구가 되었던 제멋대로면서도 애정이 넘치는 아가씨는 하루키의 아내분을 보는 느낌이 든다. (먼 북소리를 몇 번 읽다 보면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알거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하루키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가장 많이 팔려서가 아니다.

하루키를 종합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그의 철학, 전반적으로 흐르는 죽음이라는 주제, 사람과 음악에 대한 취향까지.

그의 에세이를 통하 하루키다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수직적 탐구가 그의 소설 전반의 주제이기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운동을 집착적으로 해 왔으리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4. [여담] 어떻게 일을 배울 수 있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