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 이토 사쿠라기초 - 앞으로 일본 워킹홀리데이 남은 기간 6개월
기후에서 시즈오카로 지역을 옮긴 이유는 가능하면 다양한 지역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익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는 것. 가능하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적응을 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
지금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3개나 된다고 하니 이렇게 자주 옮겨다니는 것도 고개를 주억이게 된다. 스무살이 되어 바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 나에게 어른들은 말했었다.
'오랫동안 일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했다.
그 때 당시 누군가 나를 잡아놓고 왜 한 곳에서 꾸준이 일을 하는게 중요한지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어도 몰랐을 것이다. 20대가 도파민이 가장 활발한 시기라고 하던가. 그 넘쳐나는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다니는 나에게 앞으로 알게될 일본 세상은 일년중 8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가에 쫓기듯 더 많은 자극을 찾아다녔다.
평화로웠던 온천에서의 일을 그만두기전 워킹홀리데이 협회에다가 연락을 했다.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 부탁했고 그들은 시즈오카현에 있는 한 호텔의 뷔페서빙(이하 일본어로 바이킹구) 일을 소개해 주었다.
'신 뉴오카베 호텔'
시즈오카 이토 사쿠라기초
한글자 한글자 소리내어 읽어본다. 참 희안한 이름 같다. 이런곳이 존재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도쿄에서부터 약 두시간 사십분 정도 떨어진 장소. 이런곳에 간단말이지...?
기대 반에 반, 설레임 반에 반, 걱정반
기차를 타고 달렸다. 멀리서 보이던 푸른 바다가 점점 시야를 크게 채워나갔다.
이렇게 바다와 가까이에서 전철을 달려본 적이 있던가?
마치 바다위 전철이 달리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기다를 달리는 중 문득 일본어를 처음 배우려고 했었던 일이 떠오른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새로 전학온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길었다.
그때 당시에는 마트에서 DVD를 판매했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던 시대(2003년)였는데로 우연하게 보게된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몇번이고 보았다.
해리포터 이후로 두번째로 사로잡힌 이야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 세계였다.
굴다리 터널을 지나면 바다위를 지날 수 있는 기찻길로 나를 안내해줄 것만 같았던
그런곳에 꼭 가보리라 꿈을 키우면나에게 이 길은 그 풍경에 빠져들게 했다.
과거의 기억이 짧게 스쳐지나가고 기차은 이토역에 도착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아직 7월이였고 일본의 더위는 한국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구글맵과 길을 몇번을 번갈아가며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고 호텔에 도착했다.
동그랗게 커다란 로비가 눈 앞에 펼쳐졌다.
밖의 날씨와는 이질적으로 서늘해서 마치 앞으로 기대되는 놀이동산 초입구에 서있는 듯한 느낌.
"오늘은 객실에서 머물어 주세요."
호텔 프론트의 직원이 말했다. 오늘은 호텔 객실에서 머물수 있었다.
다다미 호텔이라니. 이런곳에서 머문다니!!! 고급 일본호텔에 온 VIP가 된 느낌이다.
호텔의 지하에는 온천까지도 설레이게 만들었다.
둘째날에는 당연하게도 외부에 있는 종업원 숙박시설로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생긴 건물을 한국에서는 빌라멘션이라고 하던데 일본에서는 아파트라 불린단다.
2인1실이지만 룸메이트가 없어서 혼자서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어쩜 그냥 방 하나를 받아도 기쁜 맘이 들었을까.
이 넓은 방이 내방이라니!
무더운 7월이지만 즐거운 워홀이 또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은 역시나 녹록치 않다.
아직 서툰 일본어실력이였고 뷔페에서의 일은 무전형식의 인이어를 끼어야 했는데, 음질이 나쁜 이어폰너머로 외국어로 들리우는 소리에 집중을 하며 그릇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다. 낯언 언어의 소리를 듣는 것을 신경쓰며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살피고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것에 불만이 들어왔다.
" 유상, 접시를 너무 빨리 가져가서 부담스러우시답니다.."
'그런가' 나에게는 좀 충격이였다.
한국에서는 그릇 한접시도 빨리 치워줬으면 하는 마음에 재빨리 치웠던 것이 문제였나보다.
또 다른 날이였다.
"유상, 일할때 맨 손으로 해야지 장갑을 끼우면 안되요"
"하지만 알콜로 젖은 행주를 만지면 손에 물집이 잡힙니다."
"그래도 안되요"
'칫, 깐깐한 일본' 속으로 중얼 거렸다.
손에서 계속해서 나는 물집이 아팠다. 주부 습진일까. 태어나서 이런거 내 손에 처음 나보는것 같은데.
나 고생하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난 일본에 있고 이정도는 할 수 있어!
뷔페에서 서빙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걸어다녀서 일까 끝나서 청소기를 돌리는 시간이면 발바닥이 부어서 아파왔다. 뒤뚱 뒤뚱 걸으며 힘겹게 쓰레기를 버리고 퇴근을 하고 드디어 해방을 외치며 퇴근을 서두렀다.
보통 런치타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오후 2시였고 태양은 정중앙에 올라있었다.
ㄴ
멀리서 아지랑이 비슷해 보인는 것이 땅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져 가고 있었다.
빨리 달려가면 괜찮겠지 하며 팔을 햇볕에 노출시킨 순간 마치 타들어가는 듯 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이렇게 세다고?'
뜨겁다보다 아프다에 가까웠다. 바다가 근처사람들이 그렇게 새까맣다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최대한 몸을 움추리며 숙소로돌아오는길. 땀으로 샤워한것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방에 에어컨 온도를 최대로 낮췄다. 그래서 드라큘라가 뜨거워서 소멸되는거구나 라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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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의 7월은 축제다.
나츠마츠리를 처음으로 겪는 나에게는 엄청난 도파민DAY다.
불꽃놀이와 포장마차 인본전통 체험놀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실제 일본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랏샤이라며 호객하는 상인들과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연인들. 내손의 맛있는 주전부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일본스러운 빙수깃발과 슬러시가게까지 이 순간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일은 역시 고되고 손가락 물집은 여전히 아팠다.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이되었다. 손가락 물집이 터지고 간지럽고 아파서 아려왔던 탓이다.
그러던중 온천 히라유노 모리에서 같이 일했던 치히로의 말이 생각이 났다.
당시 부족한 일본어지만 명확하게 알아들은것은 '도시', '숙소', '포스터', '봉사활동', '무료크루즈여행' 당시 신기하게 이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일단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제일 꼿힌 말은 '도시에서 숙소제공'이였다.
봉사활동(이하 ボラスタ보라스타로 표기)으로 포스터를 붙이면 세계일주 크루즈를 탈 수 있다는 그런 뜻이였던것 같은데 우선 확인을 해보기 위해서 상담신청을하고 해당일에 맞추어 또 일을 그만 두었다.
(손가락 물집은 그때 당시 나에겐 일을 그만둘 이유였다.)
이로써 일본에서의 두번째 일을 2개월만에 마치게 된 것이다.
6개월이란 시간이 이리도 짧았던가?
뒤를 돌아서 생각해 보니 4개월은 온천 2개월은 호텔에서 일을 했는데 앞으로 남은 비자는 6개월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을 계속 그만두고 옮겨다닌 탓에 돈을 모으지 못하고 워킹홀리데이 협회와 상담을 마치고나면(상담을 세번째 하기도 민망했다.) 어쩌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이번 워킹홀리데이의 목표가 있었다.
6개월간의 일본 시골 생활을 보냈으니 남은 6개월은
도심에서도 일본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즈오카로 내려가는 길.
센과 치히로를 상상하며 시즈오카로 내려갔던 길을
이번에는 일본 청춘 영화물을 생각하며
도쿄로 상경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기차를 올랐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참 철없이 잘도 돌아녔다.
아주 잘했다.
* ボラスタ보라스타
보란티어(일본식 봉사활동 발음)
-포스터를 붙이며 NGO단체인 피스토트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일컷는 말
* バイキング
바이킹구(뷔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