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매주 로또를 산다. 자동 두 장씩. 5000원짜리 되기도 힘들다. 그래도 매주 산다.
숫자가 나온 꿈을 꾼 날은 수요일이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2009년에 같이 일했던 언론사 편집국장님이 다시 회사에 와서 기자로 일하라고 했다. 해외 이슈를 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단다. 이 회사 얘기를 해본다.
20대 때 두 번째 직장이었던 이 회사에서 국장님은 날 이뻐해 주셨다. 그때만 해도 패기와 열정이 넘쳤던 터라열심히 했다. 경제 지면 기사를 인터넷판으로 편집하는 일을 했었는데 기사 제목을 잘 편집해서 조회수가 잘 나왔고 인정받았다.
그러다 국장님이 취재기자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어쩌다 취재기자를 하게 됐는데 적성에 너무 안 맞았고, 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스물아홉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해외에서 살고 싶다며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다.
이후 6개월간 유럽에 머물며 여행도 하고 돌아다니며 백수로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쳤다. 그 좋은 회사를....부모님은 지금도 그때 얘기를 꺼내시며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국장님은 내가 퇴사할 때 만류했다. 인정해 주는 회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인정해 주는 회사에 있어야 한다고. 그땐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 말을 잘 몰랐다.
암튼 이후로도 국장님과 종종 연락하며 지냈다. 유럽에서 돌아왔을 때도 국장님은 내게 재입사를 권했지만, 난 또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날 이해할 수 없다.
꿈에서도 국장님은 또 내게 입사를 제의했다. 그동안 전적이 있었던지라 내게 파격적인 제안을 내미셨다. ‘크게 한 장!’이라고. 꿈이지만 너무 기뻤고 난 얼마 줄 거냐고 당돌하게 물었다. 국장님은 정확히 말씀하셨다.
‘1억2500만원’.
와! 심장이 두근거렸고 입이 찢어지도록 기분이 좋았다. 근데 해야 하는 일을 들어보니 또 고민이 됐다. 앞서 말했지만 해외 이슈를 쓰는 일이었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다. 구글 번역기가 있다고 하지만 10년 전보다 영어 실력이 형편없어졌고 당시 해외 이슈 쓰는 일이 싫었던 기억이 났다. 아니 그래도 1억 2500만원인데!!!!
또 미친 건지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1도 한 적 없는 회사 걱정을 말이다. 내가 없으면 내 동료가 힘들 텐데 어쩌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꿈에서 남편에게 얘기했다. 연봉 얘길 듣자마자 밝게 웃더니 “뭘 망설여! 무조건 가!”라고 외쳤다(남편의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고민 상담소인 동생에게도 얘기했다. 동생도 같았다. “뭘 고민해! 1억 2500만원이야. 무조건 가!”
꿈에서 난 결정하지 못하고 깼다. 꿈에서 숫자가 나온 건 처음이라 이건 분명 좋은 꿈일 거라 확신했다. 남편한테 얘기하니 로또를 사보라고 했다. 1, 2, 5, 0을 조합한 수동으로 말이다. 남편 외엔 아무에게도 꿈 얘기를 하지 않고 로또 판매점에 가서 숫자를 1, 2, 12, 15, 25, 50 등 여러 숫자를 만들어 수동, 자동 각각 5000원어치를 샀다. 근데 조합한 숫자를 보니 영 믿음이 안 갔다.
기다리던 로또 발표일, ‘로또에 당첨되면 뭐 할까’ 행복회로를 돌리며 부푼 기대감을 안고 확인했다. 결과는 모두 ‘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