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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Oct 21. 2023

칼을 든 아빠와 불쌍한 엄마

반갑지 만은 않았던 나의 존재

                       

내 생애 첫 기억은 다 같이 누운 단칸방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개를 던지던 장면.


당연히 남들처럼 사랑으로 시작했던 두 분. 두 분은 각자의 사정으로 국민학교도 채 마치지도 못하고 혈혈단신으로 출가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막노동, 가정부 등을 전전하며 죽어라 고생만 하다 20대 초반에 식도 올리지 못한 채 결혼하셨다. 가까스로 이어가던 신혼살림 형편에 찾아온 내 소식. 어머니가 임신 사실을 알았던 그날은 하필 막노동을 하시던 아버지가 뜨거운 기계와 함께 큰 구덩이에 빠져 허벅지 화상을 입고 피부 이식 수술을 하신 날. 와중에 들린 내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단다. 당장 수술비도 없는 상황에서 임신이라니. 태초부터 반갑지 만은 않은 존재였다.


 어느 부부에게나 그렇듯 두 분도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의 여과기가 전혀 없었다. 가부장적이고 힘이 넘치며 욱하는 젊은 아버지와 아무 힘도 없는 어머니. 하교 후 돌아오면 늘 긴장감이 맴도는 집안. 돈이 없어서 혹은 성격 차이로 투닥이다 어느 날은 눈앞에서 어머니를 때렸고, 밥상을 엎거나 물건을 던졌고, 급기야는 (진짜 해하진 않았으나) 칼을 들고 위협했다. 어머니는 멍이 들고, 피를 흘리면서도 매번 우리를 위해 싹싹 빌고 칼을 숨기며 견뎌야만 했다. 우리가 거들면 더 큰일 난다고 절대 나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남동생은 무서워 벌벌 떨면서 혹은 숨죽여 울면서 자는 척을 했다. 칼을 든 그날 밤 처음으로 우리는 울고 불며 아버지를 말렸다. 그때 아버지 눈에 돌던 빛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집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칼부터 숨기는 버릇이 생겼다.


어머니는 당연히 아버지가 끔찍이 미웠다. 시근 머리가 들 무렵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머닌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붙잡고 아버지의 흠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셨다. 뿐만 아니라 별나디 별난 친가 친척들에게 당했던 설움, 그날 하루 있었던 억울했던 이야기 등 당신의 모든 감정을 내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따금 눈물과 함께 불쌍한 당신의 생애도 모두 꺼내어 보이셨다. 모든 수모를 참고 견뎌내는 불쌍한 엄마에게 차마 나까지 모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딸이자 친구이자 남편이자 보호자가 되어갔다.


사춘기가 되자 당연하게도 아버지에게 반항심과 증오심이 생겼다. 어머니를 대변해 폭력에 반항하다 맞기도 하고, 남동생은 날 위해 아버지를 막다 코뼈가 부러졌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내게 하시던 말씀,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 안 할 테니 아버지에게 절대 티 내지 마라. 하지만 늘 잊을 때쯤이면 다시 시작되는 어머니의 이야기. 쳇바퀴는 25살 출가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미웠고, 불쌍했고, 끔찍이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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