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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Sep 27. 2023

<더 글로리 교사 편> 속 문동은은 바로 나였다.

내 인생을 바꾼 ‘사고’


 13살 여름, 6월 그날. 지금까진 그저 아픔 중 하나일 뿐, 극복했다고 믿었는데 애써 피해 왔던 ‘그걸’ 제대로 직면한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13살 아이의 목소리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모든 화살표가 그쪽을 향해 있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나는 소위 학군이 나쁜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초등학생 시절엔 늘 약자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남학생들이 존재했다. 우리 집은 늘 정문이 아닌 쪽문으로 출입해야 하는, 민달팽이와 곱등이가 출몰하는 수돗가(겸 욕실)와 플라스틱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1평 남짓 부엌을 지나 주인네 방 두 칸을 나눠 쓰는 사글셋방. 거기서 네 식구가 살았다. 그 동네에서도 좀 더 가난했다는 뜻이다.


출처 / 본인 유튜브 채널 <Oat knit 오트닛>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같은 반 코 옆에 큰 점이 있는 여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남자애들이 ‘점순이’라며 놀리고 때려댔다. 내가 대신 막아주다 외려 괴롭힘을 당하게 되니 그 친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졌다. 그렇게 남자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어느 날, 매일 쓰는 일기장에 너무 힘들다고 적었다. (당시엔 일기장 검사를 담임 선생님이 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자기가 글 쪽에 몸 담고 있는데 평소 내 일기를 보니 글재주가 있다며 키워주고 싶다 하셨고, 남자아이들을 크게 혼내주어 괴롭힘은 잦아들었다. 그렇게 교내뿐만 아니라, 교외 글짓기 대회도 입상해 전교생 앞 조회대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작가의 꿈이 시작되는 건가 싶었다. 짝사랑이지만 첫사랑도 시작해 향긋한 봄을 보냈다.


그렇게 꿈같던 봄이 지나고 6월 어느 수업 시간, 같은 조 친구들과 떠든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 포함 4명을 교단 앞으로 불러 무릎을 꿇리고 그날따라 이상하게 매서운 말들을 내뱉더니 반성문을 써오라 하셨다. 다들 의아해했다. 반성문을 제출하고 며칠 뒤, 선생님은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반성문을 이유로 나를 교탁으로 불러냈다. 갑자기 말도 없이 반 아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출석부로 내 머리를 때렸다. 순간 귀에서 소리가 났다. 백과사전, 책, 손 할 것 없이 잡히는 모든 것으로 내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한 시간 내내. 수업 종료 벨이 울릴 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그 말.

이게 불쌍해서 잘해줬더니
선생 머리 위에까지 기어오르네

니 애미 애비가 니를 그렇게 가르치던?


어린 마음에도 오기가 생겼는지 끝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버텼다. 내가 울었다면 그보다 일찍 끝났을까. 수업 종이 울린 후에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자리로 돌아갔다. 짝사랑 남학생의 이상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가 교감 및 담임 선생님과 대화 아닌 대화를 했지만, 다음 날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출석을 부르다 내 이름을 나오자 외마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쟤는 가망 없다, 포기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날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을 했고, 반 아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따돌리기 시작했다. 신난 남자애들 괴롭힘은 말해서 무엇하리. 그걸 알고도 철저히 방치했다. ‘그때’ 이미 예견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은 서예 시간에 앞자리 여자애가 붓글씨를 쓰다 팔꿈치를 뒤로 밀면서 내 자리 벼루 먹물이 소매에 묻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쟤 일부러 그랬다며 옷값 물어내라고 소리를 질렀고, 옆에 있던 남자애들은 쟤는 가난해서 물어 줄 돈도 없을 거라며 신나게 날 조롱하고 때리기 시작했다. 이내 아이들이 날 둥글게 에워쌌고, 내 흠을 다 끄집어내 놀려대고 욕하며 마녀사냥을 하듯 모두가 날 쳐다보며 비웃었다. 남자아이들에게 저항했지만 힘으론 소용없었다. 다행히 하굣길 단 한 명이 말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날 부축해 줬고 아픈 몸을 이끌고 엉엉 울면서 집에 갔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부모님은 처음엔 난리 나셨다. 분노하고 나에게 미안해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힘든 토로도 점점 짐이 되어가고, 아버지는 “어쩌겠노. 미안하지만 니가 좀만 더 버텨줄 수 없겠나.”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사 갈 형편이 전혀 되지 않았고, 난 졸업 때까지 생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된 건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아이들보다 나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잘해주실 때 눈치껏 잘 행동했어야 했는데, 내가 건방졌어. 잘못한 거야.'

'선생님, 친구는 전혀 믿지 못할, 무서운 존재구나.'

'내가 이상한 애구나.'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돼서야 돈봉투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당시엔 촌지가 성행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담당의는 혹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기억’이 떠오른 적이 있냐 물었다. 순간 놀랐다. 폐쇄적인 공간, 서로를 미워하고 고립하는 분위기, 압도되는 공기, 내가 섞이지 못하는 공간,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나에겐 전 직장이 ‘좀 더 큰 교실’이었던 것이다. 매사 그 트라우마가 건드려지니 매 순간 예민하고 힘들었을 거라고 하셨다.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당시 내겐 보호지지 체계가 전무했기 때문에. 내게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을 느끼냐고 물었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복수하고 싶어요.


담당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외부 상황에 크게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마치 재난처럼. 그래서 그때의 기억과 상처가 진하게 가슴 깊이 박혀있다고. 아무 잘못도 없이 이유를 모르고 당하니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이유를 자꾸 내 안에서 찾았단다. 처음으로 내 인생을 인정받는 느낌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어 지금까지의 날 지켜봤을 때 내가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이렇게 계속 되뇌라고 했다.


내가 하는 선택은 다 옳다.
내가 하는 행동은 다 그럴 만해서 하는 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하필 복수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나왔을까 생각하다가, 불현듯 그 드라마가 생각났다.

더 글로리 연진이가 교사였다면
동은이는 나였던 거구나.
내가 그런 감정으로 살아왔구나.


출처 / 넷플릭스 <더 글로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진짜 복수를 실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선생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 이제야 행복해진 나를 위해서. 그 복수를 준비하고, 그 사람을 대면하고, 복수를 실행할 모든 순간이 난 너무 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야 행복해졌는데, 이제 와 복수 한번 하자고 그때의 나로 선명히 회귀되기는 끔찍이 싫다.


 동은이의 복수가 시청자인 우리로서는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동은이 스스로는 매일 지옥 같은 삶이지 않았을까? 차라리 그 노력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썼다면 동은이의 결말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저 그때의 어린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

그런데 그때 난 너무 어렸고 힘이 없었어.

진짜 무서웠고 두려웠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정말 미안해.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난 이제 어른이거든.

능력도 있고 힘도 있어. 알았지?

너는 이제 마음 놓고 편히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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