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트밀니트 Oct 21. 2023

목표는 나를 뛰게 해

두 번째로 인생을 바꾼 단 한마디

 간호학과에 입학하던 해 겨울, 병원 첫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수능 실패로 성적에 맞춰서, 취업이 잘된다기에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들어온 간호학과 공부가 맞지 않아 진지하게 재수를 고민하던 시절. 마음 한 구석에는 문예창작과 입학과 작가의 꿈이 있었으나, 당시엔 취업과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집 형편을 뻔히 아는 이상 ‘문예창작과 가고 싶으니 재수할래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대학 병원 실습 시간 간호 학생은 선배 간호사들을 따라다니며 업무를 면밀히 관찰하고 간단한 심부름을 하면서 임상 분위기와 업무를 익히는 일을 한다. 환자나 약 이송, 기본 활력징후(Vital sign)를 체크하는 일 정도. 드디어 나에게도 직접 환자에게 혈압을 재는 날이 왔다. 환자 확인 후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고 어설픈 손길로 커프를 팔에 감는데, 환자분께서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다!’ 순간 얼굴에 찌릿찌릿 전기와 함께 머리가 ‘띵-’,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 한마디로 어두웠던 내 세상이 비로소 환해졌다. 내 사소한 손길이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작가와 달리 대학 병원 간호사는 가계에도 크게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다. 확실한 목표가 생긴 뒤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뒤쳐졌던 학점을 따라잡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고, 병원 실습도 매사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대학 병원 취업에 성공, 처음으로 맛본 성공은 그야말로 달콤했다. 비로소 부모님께서도 나를 인정해 주셨다. 꿈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어두웠던 세상을 환해지게 만드는구나.


물론 병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실습과 실무는 천지 차이였고,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에게 맡겨진 책임은 참으로 무거웠다. 유달리 눈치도 없고 일도 못해서 갖은 설움을 겪기도 하고, 나와 일하는 직원들도 힘들어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3년이 흐르니 병원 업무에 최적화되었다. 그때 즈음 학교를 편입해 3교대 근무와 동시에 주경야독 후 졸업했고, 슬슬 3교대를 하지 않는 공공기관으로 이직하고 싶어졌다. 당시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바로 그만두고 타 대학 병원의 상근직(계약직) 간호사로 근무하며 이직 준비를 했다. 한국어 시험, 봉사 활동, 계약직 근무와 동시에 혼자 고시원에서 자기소개서, 필기시험, 면접 등 정말 필사적으로 준비했다. 과로와 장염으로 응급실에도 실려가기도 하고 면접 당일 아침까지 죽과 약을 먹으며 화장실을 들락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렵사리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 29.5세에 연고 없이 상경하게 되었다.



이전 03화 <더 글로리 교사 편> 속 문동은은 바로 나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