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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Oct 21. 2023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공공기관으로 이직하다.

부모님은 이제 날 완전히 신뢰하셨다. 무엇보다 우리 집을 업신여기던 친가 친척들 앞에서도 당당하실 수 있겠다 싶어 기뻤다. 지금과 달리 다양한 수익화 수단이 없었던 2014년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받으며 상경했다. 동기들과 함께 신입직원 교육도 받고 서울 구경을 하다 보면 옛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나 자신이 대견했다. 엄청난 업적은 아니지만 내가 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그런 노력의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신입직원 교육이 끝나고 각자의 부서로 발령받은 첫날, 지금껏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공기에 의아했다. 병원과 달리 첫날부터 조직 문화와 사람, 분위기 모두에서 공통된 특정 느낌을 받았다.


나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

 하지만 내게 딱 맞는 회사란 게 세상에 존재할까? 병원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결국엔 잘 적응했잖아, 당연히 내가 맞춰야지. 시간이 지나면 또 적응할 거야. 정말 간절하고 힘들게 들어온 회사였기에 애사심도 꽤 있었다. 사람과 상황에 늘 부딪혔지만 최대한 배우고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매일 야근도 하며 나 딴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홀로 타지 생활과 새 직장을 동시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몇 년 간 회사란 옷에 꾸역꾸역 날 구겨 넣는 사이, 속은 곪아가고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될 줄 알았는데, 외려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던 눈동자는 잿빛이 되어가고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으며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체중이 20kg가량 늘었다. 급기야는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치부하고 사회 부적응자라 탓했다. 와중 유일하게 의지했던 연인으로부터 실연을 겪었다. 고로, 사춘기에도 겪지 않았던 방황이 시작되었다. 술 또는 수면제로 버티던 어느 날 10평 자취방에 누워 취기 어린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과 함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뒤돌아보니 '나'는 없구나.
내 인생인데 정작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구나.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 사람일까?


그러나 막연한 느낌만 믿고 힘들게 쌓아온 모든 것들을 놓기엔 더 이상 치기 어린 나이가 아니었고, 취업률이 바닥 치는 현실에선 사치로운 생각이라 여겨 비집고 올라오는 생각들을 무시했다. 결혼 후에도 관성처럼 대학원에 진학해 자기 계발에 힘썼고, 고역 같던 직장 생활도 언제나 그랬듯 꾸역꾸역 버텼다. 아이를 낳고 갖게 된 육아휴직의 끝 무렵, 고민 끝에 마지막 도전(복직)을 해보기로 했다. 동료들이 가장 기피하는 부서로 배정됐지만 바로 포기하면 왠지 후회할 것만 같았고, 하는 데까진 해보고 싶었다. 절대 싫다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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