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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Oct 21. 2023

맞지 않는 옷

나, 이대로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복직 후 수도권에서 강원도로의 출퇴근이 시작되었다.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더 이상 못해먹겠다 싶을 때까지 애써보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등원은 남편이, 하원 및 잠자리까지의 육아는 내가 온전히 맡았다. 기본 출퇴근 3시간, 아이 하원 후 귀가까지 2시간. 매일 이동 시간만 5시간인데 업무량과 난이도도 최상이었다. 내 퇴근 시간에 중요한 회의를 너무 당연하게 시작했고, 주말 혹은 공휴일까지 반납하고 출근해야 했던 허울뿐인 유연근무제. 아이는 어떻게 했냐고? 어린이집에서 항상 제일 늦게 하원하는 아이였는데, 바쁜 시즌엔 산골인 친정에 수주 간 맡겨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늘 회사에도 미안하고, 아이에게도 미안한 중간 지점 어딘가쯤 존재했다.


복직 5달 만에 몸과 마음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지만 늘 그랬듯 그것쯤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복직 전과 마찬가지로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 늘 이방인인 듯 겉도는 느낌, 나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 '나'라는 존재가 소멸되는 느낌은 여전히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사이즈가 안 맞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늘 겉돌거나 꽉 껴서 숨이 막히지 않은가? 확 벗어던지고 싶고, 나다운 내가 아닌 느낌일 것이다. 더 이상 그곳에서의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고 마음속 깊이 불행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소리쳤다. 

 8년 7개월, 할 만큼 했어
이젠 내려놓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
나를 좀 사랑해 줘

나는 단 한 번도 계획 없이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다. 남들 다 가는 선로를 이탈하면 실패자 낙인이 찍힐 것만 같았다.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도 어떻게든 끝까지 버텨서 결국엔 극복해 냈다. 그렇게 총 14년간 쌓아온 커리어. 하지만 이젠 그 버팀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이다. 처음으로 포기를 선택했다. 남들 보기에 좋을 최선의 선택이 아닌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가치,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해.


그렇게

복직 5개월, 입사 8년 7개월만에 퇴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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