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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Oct 05. 2023

어제부로, 도비는 자유예요.

퇴사 다음 날 적었던 나의 감정


어제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다. 슬슬 실감하기 시작했나 보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울컥했다. 미운 정도 정이었나. 소명을 가지고 일을 했고, 나 딴엔 진심이었으니까.


약 9년을 버텼다. 입사 첫날부터 여긴 나와 상극이구나 느꼈지만, 이미 한 번의 퇴사와 이직을 힘겹게 겪은 나는 왜 끝까지 안 해봤나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내 몸이 활활 타올라 재가 될 때까지 애써보고 싶었다. 해볼 만큼 해보고 더 이상 미련조차 남지 않을 때가 돼서야 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소속감이 있어야 안도했던 나의 관성 때문인가, 너무 오랜만의 해방감에 대한 낯설음인가, 일단은 아무것도 아닌 내 상태에 대한 불안감인가, 9년이란 시간보다 더 필요한 것인가. 이 모든 게 섞인 건가. 이 복잡다단한 기분이 아직 뭔지는 모르겠다.


이젠 적응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후회를 아예 안 할 순 없다. 인간은 어떤 선택에도 언제나 후회하는 동물이니까. 그걸 알고도 감수하고 결정한 내 선택이니까. 확실한 건 그냥 남들 보기에 좋은 직업이라 계속 버틴다면, 죽기 직전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시도조차 못한 것에 대해 반드시 뼈저리게 후회할 거라는 것. 이미 오랜 시간 후회해 왔기도 했고. 그때 느낄 후회에 비하면  지금의 한 톨 미련은 곧 바람에 흩어질 시행착오 격. 그때 가서야 땅을 치고 후회한다면 절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에 원통 했겠지만, 그러기 전 미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음에 안도한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나는 내가 정말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게끔 만들 것이다. 실패도 각오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난 잡초니까, 버티는 데 전문이니까. 지옥 같았던 9년도 버텼는데 뭔들 못하리. 난 그 힘든 시간들로 인해 더 성숙하고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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