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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11. 2019

아메리카! 오 아메리카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 : 편견에 대하여

왠지 착할 것 같은 백인들. 아주 흔한 편견이다. 이 생각? 이 느낌?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외국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백인 영웅과 흑인 범죄자라는 설정은 의외로 우리 뇌리에 강하게 새겨져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 근대화 때부터 시작된 ‘아메리칸 드림’과 ‘백인 선호 사상’까지.


영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우리의 숙원인 영어를 정말 잘한다. 왠지 호감이 간다. 어쨌든 이 ‘착한 백인과 나쁜 흑인’은 편견이다. 그것도 오류가 많은 편견이다.


지난 여름 이야기다. 나는 미국 시애틀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캐나다 C도시에서 시애틀까지 자동차로 이동 후 승선하여 7일간 여행을 한 후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출항 일주일 전에 온라인으로 장기 주차 티켓을 구매했다. 크루즈 항구 바로 길 건너편에 위치한 주차장이다. 위치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이제 나는 3000천 명이 넘는 승객들이 크루즈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승선 당일날, 주차 공간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 후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올 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흑인 여성 수납원에게 온라인으로 이미 주차비를 지불했다고 이야기하며 스마트 폰에 저장해 준 바코드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저으며 “No, No”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녀의 강한 부정에 왠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나. 예약만 했나? 주차비는 지불하지 않았나? 몸은 피곤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국 나는 현금 167달러를 지불하고 출구를 빠져나왔다.


돈을 내고 나오자마자 찜찜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 통장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이메일로 환불 요청을 하면 되겠지라고 마음을 다독여봤지만 왠지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0분쯤 달리다가 결국 나는 차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근무조가 바뀌어 내게 주차비를 받은 흑인 여성 수납원은 자리에 없었다. 근무하던 백인 여성 수납원에게 165달러를 지불하고 받은 영수증을 제시하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예약을 한 경우 종이로 출력해 제출해야 한다는 설명을 해주며 출차 당시 내가 제시했던 빨간 주차 티켓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차 티켓이 없다. 현금도 없어졌다.


주차 티켓과 주차비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환불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매니저까지 호출했다. 백인 남성 매니저 등장. 나는 그에게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리와인드했고 다행히 그는 사과를 하며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다행이다. 온라인으로 환불 요청을 했으면 돌려받기 힘들 뻔했네’라고 안도하며 동시에 ‘흑인들이 이러니 욕을 먹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매니저를 지켜봤다.


백인 남성 매니저는 금전 등록기를 열어 현금을 꺼냈다. 그는 현금 197달러를 꺼냈고, 내게 정확히 167달러를 건넸다. 그리고 20달러 지폐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철컥 소리를 내며 닫히는 금전 출납기. 헛웃음이 났다.


우리는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산다. 불쾌한 경험이 나의 편견을 작동시켜 흑인 여성 수납원을 악인으로 백인 남성 매니저를 영웅으로 설정한 것이다. 세상에 정해진 역할은 없다. 결국 사람은 인종을 떠나, 성별도 떠나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역할을 정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있었다니.


이번 경험은 내 의식 속에서 또 다른 편견을 하나를 생산해냈을 수도 있다. 아마... 미국 사람들은 다 도둑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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