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역행하는 자의 변(辯)
지인이 가족들과 상의해 추석 차례를 성묘와 식사 모임으로 대신했다는 글을 읽으니 마음이 휘청 흔들린다. ‘내가 왜 캐나다에서 차례상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에 차례상을 차리기로 결심한 계기를 되돌아봤다.
계기는 ‘팔순이 넘은 시아버님’이다. 4년 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 생활하시는 아버님. 그분의 종교는 ‘조상님’이다. 시부모님은 조상님 섬기기에 혼신을 다하셨으나 큰 형님 종교가 기독교이다 보니 제사는커녕 명절에 차례상 없이 예배를 보고 같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큰 형님댁에서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고, 아버님은 섭섭하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조상님 덕에 잘 살았다’고 평생을 믿고 살아오신 분이 큰 결심을 하신 것이다.
알츠하이머로 고생하시다 암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 아버님은 계속 당신 부인 제삿밥을 먹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 아프고 속상하셨으리라. 어느 새벽, 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네 엄마가 꿈에 나타나서 배 고프다고…”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눈이 벌게져서 이야기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둘째 며느리인데, 내가 왜?’, ‘캐나다에 사는데 어떻게 제사를 지내? 시차는? 음식은?’ 답답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고민 끝에 어머님 기일에 제사상을 차리겠다고 말했다. 홀로 생활하시는 아버님이 계속 마음에 걸리던 터라 돌아가시기 전까지 당신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자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 고맙다고 복 받을 거라며 반색하시던 아버님이 1년에 다섯 번 있는 제사 날짜를 알려주시는 것이 아닌가. (오잉? 이건 아닌데…) 극우 성향의 친정 엄마는 제사를 다 가져와야지 한 개만 가져오는 게 어딨냐며 훈수를 두신다. (울 엄마 내편 아님?) 우물쭈물 남편 왈. “네가 힘들어서 그걸 어떻게 다해. 안 해도 돼…deep sigh” (남편은 ‘남의 편’의 준말 맞음!) 며칠 후 시아버님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아무래도 네 큰형이 알면 싫어할 듯한데… ‘큰 아들’이 제사를…” (가족주의 종법제 만세~)
이렇게 흐지부지 될 것 같던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둘째 딸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6살짜리 둘째가 “엄마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친구가 나더러 중국 사람 같다고 해서 중국 사람이라고 했어.” “뭐라고? 너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사람이야. 엄마도 아빠도 다 한국 사람이잖아. 왜 중국 사람이라고 했어?”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는데 친구들이랑 다르게 생겼고, 친구가 실망할까 봐 그냥 중국 사람이라고 했어.”
한국에서 태어난 첫째 딸과는 달리 캐나다에서 태어난 둘째는 자아 정체성이 약하다. 타국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여전히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항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둘째에게 한국을 느끼게 해 줘야겠다.
결국 나는 내 의지와 판단에 따라 명절을 쇠기로 결정했다. 차례상은 시어머님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위주로 마련하고, 네이버에 물어서 상을 차린 지 4년째다. 교자상이 없으니 식탁에 상을 차린다. 집에 있는 온갖 접시를 다 동원해 음식을 담아야 한다. 지방문도 쓰지 않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연어회를 상에 올리고, 청주 대신 소주를 쓰기도 한다. 차례상은, 해마다 진화한다.
추석을 없애달라는 청원을 올리는 시대다. 다양한 방식으로 명절을 즐기는 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추석은 그 모습을 바꾸며 진화하고 있는데 나는 시대를 역행하는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차례를 지내지만 그런 나에게 혹자는 여성의 권리를 논하며 지탄할 것이고, 혹자는 유난을 떤다고 핀잔을 줄 수도 있다. 솔직히 저쪽 어느 한 구석에 ‘이 번거로운 일을 꼭 해야하나?’라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둘째 딸은 “한국은 추석에 뭐해?”라는 친구들의 질문에 할 말이 많아졌다. 동그랑땡도 예쁘게 만들고, 한과를 좋아한다. 남편은 내게 고마워하고, 아버님은 조금 마음이 편해지셨다. 나도 흔히 먹을 수 없는 명절 음식을 먹으며 보람을 느낀다. 다 같이 즐거우니 그것으로 명절은 제 몫은 다 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