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서재 속 고전 / 서경식 지음
일리아드, 오디세이, 신곡, 군주론,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카라마조프의 형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책들은 고전 도서 목록에 반드시 등장하는 책들이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고전’은 왠지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사적인 의미보다는 문학적, 철학적 가치를 가진 사회적 유산 즉 공적 의미가 더 큰 듯이 느껴진다. <내 서재 속 고전>의 작가 서경식은 전통적 ‘고전’의 의미에 ‘나를 견디게 해 준’이라는 사적인 의미를 좀 더 부여해 자신만의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었다.
서경식은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다. 일본에서 소수자인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다. 젊은 시절 그는 두 형이 한국에서 제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자 구명을 운동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1980년 대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일교포의 역사와 현실, 일본의 우경화 등에 관한 저술 활동을 해왔다.
2015년에 출판된 <내 서재 속 고전>은 머리말과 본문 그리고 저자가 권영민, 이나라, 이종찬과 나눈 대담,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있다. 이 책의 머리말과 대담은 꼼꼼히 읽어야 한다. 작가의 저작 의도뿐만 아니라 그가 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선택한 21권의 고전을 만나게 된다.
서경식은 “나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산물입니다. 나와 사회, 나와 인류의 관계를 연결시켜 사고해야 한달까요”(<내 서재 속 고전> p.239)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선택한 21권의 고전은 문학적 가치 보다는 사회적 가치가 더 큰 작품들이다.
“인간의 자율성은 심하게 파괴됐다. 인간이 단편화된 것이다. 인간의 단편화는 상대를 그 속성으로 단정하고(차별), 국가에 무비판적으로 동일화돼 타자를 일률적으로 적대시(전쟁)하는 데에 기여한다.”(p9)
차별받는 노동자, 몰살당하는 유대인, 독일군과 맞서 싸운 레지스탕스 등 작가는 거대한 폭력에 저항하며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삶의 기록을 읽으며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유지한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나를 견디게 해 준 책들’이다.
흔히 우리는 ‘고전’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려 사회적으로 합의된 도서를, 정해진 해석대로 읽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그 부담감은 독자에게 고전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내 서재 속 고전>의 저자 서경식의 ‘고전’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설정한 것이다.
‘나를 견디게 해 준 나만의 고전’. 매력적이다. 모든 독자가 개인의 삶의 역사와 욕구에 따라 자신만의 고전 목록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보다 주체적이고, 보다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