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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02. 2019

그녀의 언어를 느낀다

2. 침이 고인다 / 김애란

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단어는 몇 개나 될까? 수백 개에서 수천 개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공유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작가 이석원의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녀는 서로에게 “뭐해요?”라는 문자를 보낸다. 호칭도 생략하고, 인사도 생략하고, 단지 그 한마디뿐이다.


“뭐해요?”. 두 사람은 이 한마디를 공유하지만, 동시에 각자 자신만의 은밀한 의미를 실어 보낸다. 남자가 말하는 뭐해요? 와 여자의 뭐해요? 는 다른 뜻을 담고 있다.


작가 김애란의 작품을 읽다 보면 유사한 느낌이 든다. 소설 <침이 고인다>의 한 문장을 살펴보자. “내가 건반을 누르자, 도는 겨우 도-하고 울었다.”(‘도도한 생활’p.9) 그저 7 음괘 중 한 개인 ‘도’ 일뿐이다. 그러나 김애란의 ‘도’에는 우리의 ‘도’와는 다른 느낌, 감각, 의미가 있다.


<침이 고인다>에 실린 단편 소설 ‘도도한 생활’의 주인공에게 피아노는 환상이자 욕망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당사자인 ‘나’에게도, 부지런히 만두를 팔아 할부금을 갚고 있는 ‘엄마’에게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기재다.


그러나 피아노가 겨우 ‘도’하고 운다. 뭔가 부조화의 느낌이 든다. 지방 변두리 만두가게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피아노도 서울 반지하 자취방에 놓여있는 피아노도 그 육중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가련하고 구슬픈 ‘도’를 운다.


엄마가 사용하는 칼은 또 어떤가. 서걱서걱, 탁탁탁, 콩콩, 매일 아침마다 기상나팔처럼 들어왔던 소리. 도마 위에서 춤추던 엄마의 식칼이 김애란의 세계 속에서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모성’이 되어버린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칼자국’p.151~152)


우리에게 ‘칼자국’이란 단어는 폭력의 흔적이다. 그러나 김애란의 ‘칼자국’은 엄마의 노고이자, 애정이고 그녀의 삶이다.


어떻게 그런 치환이 가능한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내가 느끼는 김애란은 절제된 문장 속에 특정한 단어를 깊게 사용하는 작가다. 수많은 단어들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김애란의 언어는 투명한 슬픔을 내포한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을, 그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의 저서 <침이 고인다>를 읽으며, 아직도 친정집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30년쯤 된 ‘세계 문학 전집’이 떠올랐다.


엄마가 힘겹게 할부금을 갚았을 그 책은 아직도 겉표지의 금장을 반짝이며 집 한편에 고결하게 자리하고 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만두집 피아노처럼, 울지 못하는 반지하 자취방의 피아노처럼. 아마 김애란의 언어는 우리의 지난 추억과 함께 읽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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