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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30. 2019

104세 그녀의 마지막 외식

캐나다 시골 마을 어느 식당 이야기

“어떤 여자가 나 좋다는데?” 평일 점심시간. 식당이 한창 바쁠 때인데 남편이 문자를 보냈다. ‘뭔 소리야, 또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 손님들 중 최고령인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사진 속 그녀의 웃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따스하고 평화롭다. 올해 104세인 그녀는 종종 우리 식당에 식사를 하러 오신다. 할머니는 식당에 오실 때마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캐나다 이민 후 대도시에서 2년을 거주하다 사업을 위해 C도시로 이주한 지 13년 째다. 봄이면 퇴비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었던 작은 시골마을이 지난 몇 년간 급속도로 성장해 어느덧 지방 소도시로 자리 잡았다. 많은 인구가 유입돼서 인지 조용하고 보수적이던 마을이 조금 산만하고 어지럽게 변하고 있다.


7년 전 이곳에 작은 식당을 개업했을 때 매출이 적어 하루하루 마음을 졸였었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던 시기를 거쳐 여러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 준 결과로 식당은 이제 꽤 자리를 잡았다.


지난 시간 동안 셀 수 없는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고, 여러 사연이 있었다. 어떤 손님들은 자신이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며 팁을 잔뜩 주기도 하고, 또 다른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을 양껏 먹은 후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서 돈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기도 했다.


직원들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도망가는 무전취식도 다반사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 솔과 세제를 훔쳐가는 사람도 있었다. (가방에 변기솔을 어떻게 넣어갔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앞접시며 포크를 몰래 가져가는 사람들, 점심 도시락 세트 한 개를 주문하며 이것 빼고 저것을 넣고, 깨소금 빼고, 수프는 너무 뜨겁게 하지 말고 등등 열 가지 정도의 요구를 하는 손님도 있다.    


그런 힘든? 진상? 캐네디언 손님들이라도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밥 벌어먹고 산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자주 이런 손님들을 경험하다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마음의 온기를 잃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찾아주는 단골손님들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생으로 일하던 소녀들이 선생님이 돼서, 간호사가 돼서 여전히 우리 식당을 찾아온다. 방황하던 사춘기 소년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오늘 104세 할머니의 딸이 식당에 와서 지난밤에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우리 식당이 자기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라며, 지난주 식사가 마지막 외식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감사인사와 더불어.


사진 속 그녀의 미소가 떠오른다. 한 세기를 살아온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악의, 욕망, 미움, 차별도 담겨 있지 않다.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그런 따스한 눈으로 생을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인생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고 험난했을 것이다. 다만 차곡차곡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삶을, 인간을, 세상을 완벽하게 사랑하게 되었으라 추측해본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이 인생임을 또 배운다. 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그 의미를 알려준 104세의 그녀. 그녀가 가는 길이 부디 편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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