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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21. 2019

추억이기에 완벽한 사랑

4. 그 남자의 집 / 박완서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그 남자의 집> P.169) 첫사랑과의 재회를 앞둔 세상 모든 여자들이 바로 이런 마음일 것이다.


작가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의 집>은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지인이 돈암동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된 추억을 떠올린다. 돈암동. 결혼 전 그녀가 살던 동네이자 ‘그’가 살던 곳이다. 추억을 더듬던 그녀는 결국 호기심에 첫사랑이 살았던 그 집을 찾아간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홀로 지난 시간을 껴안고 서 있는 한옥집. 과거와 현실이 교차되며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6.25 한국 전쟁의 종전을 앞둔 시기는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흉흉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랑은 시작된다. 여자는 상이군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온통 잿빛이었던 전쟁통에 별처럼 빛나던 첫사랑. 하지만 사랑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다. 결국 그녀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를 선택해 결혼한다.


결혼 생활은 그녀의 기대와는 달랐다. “문화적 차이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아니라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내 것보다 저급한 것으로 얕보고 동화는 물론 이해까지도 거부하는 태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p.153) ‘문화적 차이’는 ‘혐오’를 야기했고 그 와중에 첫사랑과 재회하게 된다. 지루한 일상에 활력이 찾아왔다.


육체적 결합에 대한 욕망은 커져갔고, 오롯이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고자 여행을 가기로 한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며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이별한다. 이제 여자는 현실로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절차를 차곡차곡 밟아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그녀는 첫사랑의 부고가 실린 신문을 읽게 된다. 여자는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용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p310)고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회고하며 이별을 고한다.


이 책은 격정적인 첫사랑의 이야기도, 충격적인 불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어떤 방해물이 있어도 물처럼 흐르는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 남은 마지막 남녀처럼 사랑하던 연인은 자연스럽게 헤어졌고, 경제적인 안정을 통해 자신의 삶이 완벽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무너진다. 첫사랑과의 재회 역시 꿈꾸던 것과는 다르게 끝이 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렇게 매사가 어긋나기만 한다. 완벽한 인생도, 완벽한 사랑도, 완벽한 행복도 없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는 두 사람의 포옹을 ‘완벽했다’고 표현했다. 왜 그랬을까?


“만일 그 시절에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뭐가 되었을까. 청춘이 생략된 인생, 그건 생각만 해도 그 무의미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감사하며 탐닉하고 있는 건 추억이지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다.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p.70)


완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그것이 완성되지 못한 지나간 추억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녀에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미완성의 추억. 작가 박완서는 그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의 한 조각을 특별한 애잔함으로 지어 낸다. 책을 통해 전달된 그 감성은 독자의 몸에 흘러 들어와 오래오래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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