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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05. 2016

고독한 책읽기-2

바람의 기록 / 박경희

옆방에 사는 지혜 씨가 자신의 스승님의 친구인 한국분이 쓰신 거라며 책을 줬다. 여기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식당이나 카페에 기증하고 있는데 록빠 카페에도 놔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읽게 되었는데, 2007년 무렵 맥간에 왔던 한 남성이 그때 만나 티베트어를 배우던 티베트 여성을 6년이 지난 후 꿈에서 떠올리고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얘기다. 그녀를 힘들게 찾아내지만 티베트를 위해 분신을 결심한 그녀를 막지 못하고 그 모습을 목격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소설적으로 잘 쓰였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못하겠다. 그런 평가를 하기 이전에 마지 내 가족이나 친구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책을 읽는 것처럼 감정이 이입되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먹던 식당, 내가 걷던 거리, 내가 만났던 듯한 사람들, 내가 겪은 것 같은 사건들… 그런 속에서 마지막 주인공 여성이 분신하는 대목은 마음이 한없이 아팠다. 언젠가는 티베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 역시도 글로 쓰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가 결국은 아프고 슬플 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좀 더 구체적인 각각의 티베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을 상실할 때 인간성 역시 상실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슬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티베트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생생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마음에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나치에 희생된 유태인들을 기리는 예드 바쉠 Yod Vashem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드 바쉠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희생자들의 이름, 살았던 곳, 태어난 곳 등 그들에 관한 모든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그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노래하고, 춤췄던 사람이었음을, 개성과 역사와 기억을 지닌 존재였음을 기억할 때에만 우리는 그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을 희생자 일반, 어느 국민 일반, 계층 일반으로 만들 때 우리는 그 개별성을 놓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자신과 그들 사이의 깊은 연관성 역시 잃어버리는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그토록 많은 희생을 겪었던 유태인들이 지금은 팔레스타인에 떨어지는 폭탄을 불꽃놀이 마냥 즐기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지금의 유태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개별성이, 인간성이,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그저 추상으로서의 악, 위험 그 자체이며, 자신들과 단절되고 절멸시켜야 할 어떤 것인 것이다.


안네의 일기가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사랑받았던 것은 그 이야기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당시 나치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숨어 지내고, 힘든 시간을 혹은 더 참혹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일기를 통해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한 인간, 한 소녀를 만났고 그녀의 고통, 절망, 소녀다운 사랑과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네는 더 이상 이름 모를 수백만의 유태인 희생자 중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공감하고, 사랑하는 한 어린 소녀가 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들, 존재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주고, 불러주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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