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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05. 2016

다람살라 이야기

20160605

인도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무래도 우편을 통해 편지나 엽서 혹은 소포를 보내고 받는 일이 많아졌다. 한국에서라면 고작 카드 고지서라든가 선거 공보물 따위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을 텐데. 아무튼 인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 한국 식재료나 책 같은 것들을 한국에 갔을 때 직접 부치기도 하고, 친지에게 부탁해 받기도 하기 때문에 우체국을 드나드는 일이 종종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요즘은 인도라고 해도 인터넷 이용이 쉬워져서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거나 채팅을 해도 괜찮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보낸 엽서를 받는 기분이 남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이라도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엽서를 보낸다.


이렇게 우체국에서 제공하는 편의가 나의 생존과 사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느샌가 우편 체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에서 지난 5년 동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지난가을 유럽에 가서는 가는 나라마다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부쳐보는 것으로 그 나라의 시스템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물론 내가 엽서를 보내봤던 영국, 프랑스, 스페인 모두 인도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엽서를 받은 한국의 친구들은 "확실히 스페인이 인도보단 엄청 빠르던데."라고 감탄했다. 물론 그중에도 사라진 엽서가 있었고 그것이 보내는 쪽의 문제인지, 받는 쪽의 문제인지는 규명이 필요할 수 있지만, 경험적으로, 이성적으로 유독 인도로 보낸 엽서 4장만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인도의 우편 체계에 결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인도는 어떤 우편 체계를 갖고 있길래 이런 결함이 있을까. 사실 이것을 어떤 '체계'의 결함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인도에서의 우편과 관련된 문제는 주로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07년 처음 인도 여행을 왔을 때도 당연히 한국으로 꽤 열심히 엽서를 보냈다. 하지만 2-3주가 지나도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꽤 많았고, 한 달이 넘어서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바라나시에서 만난 여행자가 자기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아, 인도에서 우표를 사서 엽서를 부칠 때는 우체국 직원이 소인을 찍는지 확인을 하고 와야 해요. 난 그걸 확인 안 하고 우체국에서 나왔다가 놓고 나온 물건이 있어서 다시 갔더니 직원이 내가 좀 전에 붙인 우표를 조심스럽게 떼고 있더라고요." 말하자면 그 여행자가 낸 우표값을 그런 식으로 떼먹는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러 차례 인도의 우편 체계가 그다지 믿을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엽서를 보내면서도 '제대로 배달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지' 이런 마음이었고, 친구들에게도 '내가 보낸 엽서를 못 받아도 인도의 우편 체계 때문이지 내 탓이 아니야'라고 일러두었다. 그렇게 되니 반대로 엽서를 보내지 않으면 서운해할만한 사람들도 내가 보내지 않은 것인지, 인도의 우편 체계 탓인지 알 수 없어서 '그러려니' 하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살게 된 후로 이 문제는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모처럼 한국에 갔을 때 사들인 된장, 고추장, 김, 미역, 멸치 따위를 손수 포장해 보통 3개월이 걸리는 선편으로 부치고 나면 대개는 인도로 돌아온 후에도 1-2개월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한 번은 그렇게 기다려 받은 멸치 봉투에 쥐가 만든 것이 분명한 구멍이 손가락 세 개는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뚫려 있었다. 멸치의 손실은 3분의 1 정도였지만 그 정도라면 쥐가 분명 봉투 안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나머지도 먹을 수 없어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 먹이겠다는 티베트 친구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사실 주로 인도로 보내는 우편물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이렇게 동물에 의한 것보다는 사람에 의한 것이 많다. 우편 박스가 찢어져 있거나, 넣어 보낸 물건, 특히 음식물이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늘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이탈리아의 우편 체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탈리아의 우체국 직원이 '오늘 저녁엔 소바를 먹어볼까' 하면서 자신의 국수를 슬쩍하지는 않을 텐데, 왜 감쪽같이 사라지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했지만, 인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몰라도 다람살라에서는 어쨌든 소포로 보낸 많은 음식물들이 양이 줄거나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라면 봉지가 뜯긴 채, 일부를 먹고 나머지가 들어 있는 채로 소포를 받은 적도 있고, 분명히 넣은 물건이 감쪽같이(라고 하기엔 너무 명백하게 상자가 뜯긴 흔적을 간직한 채) 사라진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냥 내용물이 사라지는 것만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인도의 우편 체계가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갖지 않고서는 울화가 치미는 우체국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 때문이다. 실례로 나만해도 얼마 전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항공편으로 책을 받게 되었다. 친구는 한국의 우체국에서 4-5일이면 도착할 거라는 말에 비싼 EMS로 소포를 부쳤지만, 그 소포는 통관을 거치는 데만 11일이 소요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인도 세관에서 11일 동안 책이든 이 소포를 어떻게 관찰했는지 알 수는 없다. 물론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하겠지만, 정작 내가 사는 다람살라의 우체국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인력 부족만이 문제는 아닐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인도의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람살라의 우체국에서는 편지나 엽서, 서류 같은 것은 배달을 해주지만 소포는 배달을 하지 않고 수신자에게 전화를 걸어 우체국에서 찾아가도록 한다. 그런데 친구가 보낸 이 EMS 소포는 우체국에 도착하고 7일이 되도록 내게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 뒤늦게 인터넷 조회로 도착 사실을 알게 된 내가 우체국에 찾아가 "내 소포가 도착했다고 하는데..."라고 말했지만 직원들은 합심한 듯 "한국에서 온 소포는 없다"고 답했다. 심지어 그들의 뒤편에 보이는 Korean Post 상자를 가리키며 "저거 아니야?"라고 해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인도의 우체국에서는 여기서 물러나면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다. 집요하게 "저 상자 확인해봐 줘"라고 조른 후에야 그들은 그 상자가 한국에서 왔고, 받는 사람이 나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런 경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든가, 적어도 '아, 여기 있었네?'라며 쑥스러워하거나 혹은 당황할 법도 하지만 인도인들의 대범함은 그런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아니 그들에게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기 때문에 태연하게 상자를 내어주고 서명을 요구한다. 인도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 모든 과정이 울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지만 이제는 무사히 소포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게다가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온 것이지 뭔가. 이 정도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새책을 잔뜩 받았으니 당분간 이 행복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우편 체계라는 점에서 본다면 한없이 느린 일 처리의 속도라든가, 직원들의 불성실한 업무 태도라든가, 또 정말 체계의 문제가 여전히 많다. 우편물을 부치거나 받으러 갔다가 전기가 나가서, 인터넷 시스템이 다운돼서 허탕을 친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요즘엔 붙여진 우표를 몰래 떼는 일은 줄어든 것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인도에서 한국으로 보낸 엽서들이 그럭저럭 잘 도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인도로 부친 엽서 4장, 이것은 아마 영영 찾지 못할 것 같다. 어딘가의 우편함 바닥에 깔려 잊혀 가고 있거나, 배달이 귀찮아진 인도 배달원이 '아이고 이렇게 작은 엽서까지 어떻게 다 갖다 준단 말이야'하고 어딘가의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영영 시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린 4 장의 엽서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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