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banii May 24. 2016

고독한 책읽기-1

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

열심히 책을 읽던 시절이 있다. 지금보다 한참 젊을 때다. 그때는 주로 소설을 읽었다. 그러다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소설이 아닌 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도입부에 책만 읽는 언니를 보며 따분해진 앨리스가 나온다. 앨리스의 표현에 따르면 언니는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을 읽고 있다. 그 책에 내가 등장했다면 나도 아마 앨리스를 따분하게 만들었으리라.


소설가들께는 미안하게도 소설보다는 인문학 책과 산문집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도 산문집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도 몇 권 읽었지만, 다시 미안하게도 소설보다는 산문이 내 스타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이 우주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나는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 도시에 공급하는 고독의 가격을 낮춰 주기를 中


이 감정을 나는 완벽히 이해했다. 아니 완벽히 경험했다. 중학생 시절, 우주와 시간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의 이미지와 그 안에서 티끌이 되어 사라지는 나, 그리고 내가 존재하기 전에도, 후에도 아무런 상관없이 무한하게 펼쳐지는 시간의 흐름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이 고독이라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하지만 중학생이던 나는 그저 두렵기만 했고, 두려움을 설명도, 이해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울면서 잠이 들었다.


이제는 우주의 무한과 내 존재의 유한을 생각해도 그렇게 두렵기만 하지는 않다. 윤회를 믿거나 구원을 기다려서는 아니다. 어차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비록 티끌에 불과하지만 나 자신이 이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우주의 어딘가를 끝없이 여행하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다람살라는 서울은 물론이고 한국의 어지간한 곳보다 별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1800미터에 가까운 해발 고도와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 탓이다. 어느 날 밤 자다 깨어 무심코 발코니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었는데, 이들이 분명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나를 감싸고 있는 별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였지만 그것이 고독이라면, 전혀 외롭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과 완벽하게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책읽기에서는 발생한다. 김연수는 내게 그런 작가다.

작가의 이전글 고독한 책읽기-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