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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23. 2016

고독한 책읽기-5

불멸의 산책 / 장 크리스토프 뤼팽

내 마음 같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


나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사실 나는 조금 시니컬한 유머가 담긴 글을 좋아한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가득하지만 나는 그런 시니컬함을 유지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성격이며, 유머 감각도 부족한 듯하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항상 그 거리만큼 자아의 만족감을 반감시킨다.


아무튼 그런 내가 읽기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던 책이 바로 '불멸의 산책'이다. 프랑스 외교관 출신의 작가인 장 크리스토프 뤼팽이 산티아고 북쪽 길을 걸었던 경험을 한참 후에 기억에 의지해 적어 내려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산티아고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여행기를 본 적이 없다. 


"카미노는 영혼을 찾아가는 시간의 연금술이다.

그것은 즉각적일 수도 신속할 수도 없는 긴 과정이다. 몇 주 동안 계속 그 길을 걷는 순례자는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일주일 걷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데서 느끼는 다소 유치한 자부심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잠깐 걷는 것만으로는 습관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더 겸손하고 심원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잠깐 걷는 것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못한다. 돌멩이는 가공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돌멩이를 다듬으려면 더 오랜 노력, 더 많은 추위와 더 많은 진흙 길, 더 많은 배고픔과 더 적은 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왜 많은 사람들이 신앙심 때문만이 아니라, 스포츠나 영적 이유 따위를 핑계 삼아 여전히 산티아고 길을 걷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걷는 것 자체가 주는 이런 의미는 이 길을 걷기 전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걷기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왜 걷는 일이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 경험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영국에 살고 있던 동생을 먼저 방문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겠다는 계획을 말하자 동생은 큰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누나,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2박 3일이면 갈 수 있어. 얼른 다녀와서 우리 가족들이랑 다른 데로 놀러나 다니자." 아, 아무리 설명해도 동생과 올케는 대체 왜 차로 이틀이면 충분한 그 길을 한 달이나 걸려서 걸어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 순간에 '불멸의 산책'을 쥐어줄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렇게 산티아고 길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그것이 중세의 순례길이 가졌던 신앙심과 성스러움을 담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와 같은 신비한 영적 체험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뤼팽은 그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해도, 이제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신앙심을 다지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카미노는 거대한 포스트모던 시장에서 소비를 위해 제공되는 상품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산티아고 길이 아직 순례길로 여겨지고는 있지만, 실상은 신앙과 영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마음 편히 적은 예산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곳을 찾는 순례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산티아고 길 순례를 소재로 한 영화 'The Way'에서 주인공 마틴 쉰은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다가 조난당해 사망한 아들을 대신해 순례를 시작하지만, 그가 길에서 만나는 이들은 살을 빼러 온 네덜란드인, 소위 'writer's block'을 극복하러 온 아일랜드 작가, 폭력 남편에게 시달리던 미국인 이혼녀 등이다. 그들 중 누구도 신앙심이 동기가 되었으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작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보여주는 감동은 신앙심 이상의 무엇이 그 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미노는 나에게 자신의 진실을 슬며시 알려주었고, 그것은 곧바로 나의 진실이 되었다. 그 깨달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독교 순례지가 아닌 훨씬 더 큰 것이 될 수도 있고 훨씬 더 작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장소는 고유한 것으로서,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기에 각자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갖다 붙일 수 있다. 만일 그곳이 특정 종교와 가까워야 한다면, 그것은 종교들 중에서도 가장 덜 종교적인 종교, 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하지 않고 단지 인간이 자기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허용하는 종교여야 한다. 그렇다면 산티아고는 불교의 순례지다. 산티아고 길은 생각과 욕망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주고, 모든 허영심과 육체적 고통을 마음에서 지워주며, 사물을 둘러싸 그것을 우리의 의식과 분리시키는 완강한 껍질을 제거한다. 그리하여 자아가 자연과 공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종종 나 자신은 불교도라는 소개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도 '불교도인 네가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심지어 독일에서 온 이슬람교도인 청년 둘을 만난 적도 있다. 나도 역시 '이슬람교도인 네가 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고 묻자 친구 사이인 둘 중 한 명이 우연히 산티아고 길을 알게 됐고 다른 친구에게 권유해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산티아고 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어떤 것이 존재했고, 그 때문에 그 길을 걷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우리는 그것이 비록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 힘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카미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 있고, 지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 전체를 들려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핵심은 빠져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도 머지않아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뤼팽이 책에 쓴 이 마지막 구절은 그의 책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 책에 대해 감상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역부족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내가 산티아고를 걷기 전에도 그랬지만 다녀온 후에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다만 그와 조금이나마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그래서 이 책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나도 다시 그 걷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 책을 읽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리고 그 길을 걷게 된다면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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