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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21. 2016

고독한 책읽기-4

나무 수업 / 페터 볼레벤

일본의 궁목수인 니시오카 츠네카츠가 쓴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에는 천 년 이상 된 나무를 구하러 대만의 숲을 방문했던 경험이 소개되어 있다. 숲에 들어서서 마주한 나무들의 모습이 신령으로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한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한 자리에서 살아온 생명에 대한 경외감, 그것이 어쩐지 알 것만 같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 


니시오카 츠네카츠가 나무에 대한 한없는 경외감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베고,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었다면 페터 볼레벤은 그 나무를 살피고, 돕는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고, 자신의 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의 글은 투박하기는 하지만 숙성된 경험에서 우러나온 향기가 그득하다. 


페터 볼레벤은 20년 넘게 숲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면서 나무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혼자 자랄 때가 아니라 서로 함께 자랄 때 더 건강한 나무들은 뿌리와 뿌리를 맞대어 동료를 돕는다. 햇빛이 잘 들게 되었다고 해서 서둘러 위로만 자랐다가는 겨울이나 벌레의 습격 같은 위기에 대처할 영양분을 비축하지 못해 오히려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어린 아기  나무들은 엄마 나무 밑에서 부족한 빛과 물을 가지고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넓은 평지에 혼자 자라는 나무보다 숲에서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며 자라는 나무가 훨씬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무들은 각자의 성격대로 환경에 반응한다. 같은 조건에서도 언제 낙엽을 떨구고 언제 꽃을 피울지 나무들마다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나무는 자신들의 생존만이 아니라 수많은 균류, 벌레, 조류나 초식 동물의 삶의 터전이다. 더 나아가서 숲이 있는 곳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까지도 수분이 전달되어 비가 내리고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오래된 숲일수록 이런 생명의 보금자리 역할을 건강하게 수행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극단적인 나무 보호론이나 환경 예찬론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나무가 생명체란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또 모두가 별생각 없이 나무를 물건처럼 취급한다. 난로에서 신나게 타닥타닥 타는 장작은 알고 보면 불길에 사로잡힌 너도밤나무나 가문비나무의 시신이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의 종이 역시 종이로 만들려고 쓰러뜨려(그래서 생명을 빼앗아) 잘게 조각낸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다. 너무 지나친 말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식물도 생명이 있고, 고통을 느끼니 채소도 먹어서는 안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결국엔 자연의 일부고 신체 구조상 다른 종의 유기물을 이용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런 필연성은 모든 동물과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나무에게도 나무에게 맞는 삶을 허용한다면 동물을 이용하듯 나무를 이용하는 것 역시 별문제가 안 될 것이다. 나무에게 맞는 삶이란, 나무가 사회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고, 완벽한 흙을 갖춘 진짜 숲에서 성장할 수 있으며, 쌓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일부나마 존엄하게 늙어 갈 수 있고 마침내 자연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삶이야 말로 나무 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주어져야 할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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