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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an 09. 2017

다람살라 이야기

20170109-온 마음으로 이별하기

살면서 이별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이별을 진정으로 경험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내가 겪은 가장 오래된 이별에 대한 기억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여섯 살이었고, 그 이전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기차를 타고 부모님과 아버지의 고향에 내려갔고, 시골집 마루에 꿇어앉은 아버지가 하얀 옷을 입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다음 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마루에 기대어 어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어른들이 사실은 할아버지를 산에 묻으러 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애착도 없었고, 산에 묻히러 간 할아버지가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하게 배가 아팠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배가 아팠다. 아마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찾아오는 나의 위염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산에 묻혔다. 내가 철이 든 이후 내내 할아버지는 내 삶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저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일뿐 특별히 슬프거나 아쉬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목격한 최초의 이별이라는 것은 아주 아주 오랜 후에야 깨달았다. 그 이별의 주인공은 적어도 내게는 아빠와 할아버지였지만, 나도 어쩌면 그 이별에 조금은 동참하고 있었다. 그때 이해하지 못한 이별을, 내 몸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내 위는 그래서 자꾸 신호를 보낸 것일까.


이별을 진짜 경험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한집에 세 들어 살던 같은 반 단짝 친구 정은이가 이사를 갔다. 우리는 밥도 같이 먹고 화장실도 같이 갈 만큼 친했다.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간장 계란밥을 나는 정은이네 집에서 처음 먹어보았는데, 거기 올라가 있던 고소하고 스르르 녹는 노란 물체가 버터였는지, 마가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은이네가 이사를 간 후 한 두 번 서로의 집에 놀러를 갔던 걸 보면 그렇게 멀리 이사를 간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10살 먹은 아이에게 내가 사는 동네 이외의 세상은 우주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서울이나, 외국이나, 달과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정은이는 나의 세계 밖으로 멀어졌다. 그때도 나는 그것이 이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잊혔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정은이가 생각났을 때는 마치 겨울 외투에 돈을 넣고 장롱에 보관했던 걸 기억해낸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 외투 주머니엔 더 이상 돈이 남아있지 않은 허전함 같은 것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삶을 살다 보니 이별을 자주 한다. 이별이 아닌 듯 굴기도 하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도 이제는 그 하나하나가 아픈 나이가 된 모양이다. 2주 후면 떠날 것도 아프고, 지금 살고 있는 다람살라 역시 언젠간 떠나리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그래서, 그럴수록 무감각하게, 아무 아닌 듯 이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거리 하나하나 지나치는 행인 한 명 한 명 눈여겨 보아 두고, 해가 뜨고 지고, 구름이 높고 낮고, 바람이 불다 그치는 모든 것들과 매번 이별한다. 온 마음과 다해 이별하기를 자각하면서 조금 슬프지만, 언젠가 세상과 이별하는 일을 상상하곤 한다. 그리고 찾아올 내가 없는 세상도 그려본다. 내가 없는 내 방을 그려보듯이, 분명하고 담담하게.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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