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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Mar 04. 2017

다람살라 이야기

20170304

내가 사는 집의 주인 아저씨 이름은 온카르 싱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슬림도 힌두도 아닌 시크교도다. 아저씨는 늘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깔끔한복장을 한 채 조그마한 스쿠터를 타고 동네 위 아래로 부지런히 다니신다. 처음 집을 얻을 때는 인도인 집 주인과 흔히 겪는 자잘한 문제(전기나 수도 문제, 집세 문제 같은 것들)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거의 겪지 않고 평온하게 5년 가량 살고 있다.

싱 아저씨네 가족은 원래 부모님, 아저씨의 아내 그리고 아들이었는데 재작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저씨의 아내는 아랫 다람살라의 보험회사에 다니는데 지난 가을 뭔가 수술을 하다가 간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죽을 뻔했다고 한다. 옆구리에서 거의 명치까지 이르는 수술자국을 보여주셨는데, '인도에선 절대 병원에 가지 말아야지'라고 다시금 다짐하게 됐다.

외아들인 라비는 찬디가르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가끔 집에 오면 아버지를 대신해 세입자들의 요구사항을 처리한다. 예를 들면 집안 페인트를 다시 칠해달라던가 하는 것이다. 나이가 젊은 만큼 외국인에게 관심도 많지만 도를 넘게 호기심을 표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점잖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족에게도 골칫거리가 있으니 바로 싱 아저씨가 애주가라는 것이다.

아저씨의 술 사랑은 꽤 유명한데, 월세를 받아 술을 마셔버리는 아저씨 때문에 '제발 월세는 아저씨에게주지 말라'는 아주머니와 라비의 부탁으로 세입자들도 잘 알게 됐다. 물론 전구를 갈아주거나 수도를 고치러 온 아저씨가 술냄새를 풍기는 것으로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저씨는 대체로 명랑하고, 술을 드시면 특히 명랑해서 3자의 입장에서는 밉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한번 아저씨와 같이 걸어갈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저씨가 어렸을 때는 정말 다람살라가 작은 마을이었다는 것,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이 이주해 올 때부터 보았고 덕분에 티베트인 친구들과 함께 자랐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 친구들은 거의 외국으로 떠나 이젠 없다는 것 등등 이다. 아저씨의 유창한 티베트어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다람살라는 이제 너무 많이 변했고 더 이상은 친구도 없다는 말을 할 때 아저씨는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것일까.

작년 한동안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와 라비가 아저씨의 술버릇을 못 견디고 어딘가 감금한 거 아니냐며 농담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감옥에 다녀왔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남의 보증 서류에 싸인을 해준 것이 잘못돼서라고 한다. 거듭되는 아저씨의 사고에 가족들도 이번엔 정신차리게 놔둬야 한다며 감옥살이를 방치했다. 감옥에서 돌아온 아저씨는 여전히 터번을 두르고 흰수염을 휘날리며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술에 살짝 취한 명랑한 표정으로 길에서 만난 아저씨가 조금 더 쓸쓸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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