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2
인도에서 여름휴가는 2주까지 쓸 수 있었다. 유급 휴가가 한 달 주어지는데, 대개 2주 정도는 티베트 새해인 로싸 때 쉬게 되기 때문에 나머지 2주를 연중 나눠쓰거나 여름휴가로 보내곤 했다. 한국에 돌아와 일하는 시간이 하루 3시간 반에서 8시간(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난 대신, 2주의 여름휴가는 3일로 줄어들었다. 휴가를 맞아 오로빌과 라다크로 여행을 다니던 시절은 그야말로 지난 과거가 됐고, 3일의 휴가를 어떻게 하면 3주처럼 보낼지 고민할 틈도 없이 얼렁뚱땅 귀농한 친구들이 사는 함양과 해남을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함양에서는 그나마 휴가답게 지리산 자락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진주까지 진출해 냉면을 먹고 왔다. 진주문고 방문을 마지막으로 함양에 돌아와 다음날 일찍 해남으로 향했다. 나의 목적지인 미세 마을을 구경해 보고 싶다는 함양 귀농인 두 명과 함께.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대접한 친절한 미세 마을 식구들은 밥을 다 먹고 나자 더욱 친절하게 "작업 시작은 세 시"라고 일러줬다. 작업이라니, 작업이라니... 나는 휴가란 말이다.... ㅡㅡ 그러나 정확하게 세 시, 나는 입고 왔던 원피스를 벗고, 일바지에 팔토시, 모자까지 갖춰 쓰고 생강밭에 서 있었다. 미세 마을 식구들 다섯 명과 우리 일행 세 명이 할 일은 생강밭의 잡초를 뽑고 짚으로 멀칭을 하는 것이었다.
해가 나지는 않았지만 무더운 날씨, 미처 가리지 못한 목덜미가 따가웠지만, 바람이 불고 있었고, 점점이 떨어진 사람들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밭고랑을 너머 가끔 주고받는 농담과 웃음소리, 송골송골 맺히는 땀과 한 일에 비해 받기 부끄러웠던 새참까지. 오랜만의 밭일이 참 즐거웠다고 고백해야겠다.
오래전, 귀농을 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도시에서 살 이유를 더 찾기 힘들었다. 아니 도시에서 사는 일 자체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귀농학교에 다니고, 침뜸을 배우러 다녔다. 막연히 생각했던 귀농이 막연한 채로 실현되지 않은 것은 나의 먹물 근성 때문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혹은 비혼 여성이 귀농하기 어려운 상황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다. 다만 농사만으로 살아남기는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계산만은 분명했고, 어쩌면 귀농 전 마지막 외유가 될 거라 생각했던 7년 전의 세계 공동체 순례 계획은 결국 인도에 주저앉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귀농을 할 계획이, 현재는, 없다. 종종 "나는 아무래도 농촌이 아니라 자연을 좋아한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된 지 좀 되었는데, 이번의 짧은 휴가에서 만난 농촌과 특히 밭일은 마음을 정화시켜준 것 같다. 나는 과연 귀농을 하게 될까.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