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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Oct 18. 2017

불성실한 생활일기

20171018

6년 반 만에 한국에 들어와 6개월 정도 지내면서 가장 많이 변한 일상은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혼자되신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또 이번이 아니면 언제라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제 내가 어딘가 다른 곳을 또 떠돌까 하는 계획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란 것이, 엄마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아빠를 보내드리며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매일 통화를 하고, 또 가능하면 엄마가 계신 동생네 집을 다소 폐가 될 줄 알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계획한 것이 다음 주로 다가온 엄마를 모시고 하는 제주도 여행이다. 사실 제주도에는 엄마와 내가 공유하는 사연이 있다. 수십 년 전 가난한 기타리스트인 아빠와 만삭의 엄마가 큰 딸을 데리고, 작은 딸은 화순의 외할머니댁에 맡기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난 곳이 제주도였다. 70년대에는 제주도 개발 붐이 불었다고 하고, 유흥업소에서 기타를 치는 아빠는 그 개발 붐에 경기가 좋다는 동료의 연락을 받고 제주도로 향했다. 그리고 만삭인 엄마 뱃속에 내가 있었다.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랬다는 그 아기가.


제주도에서의 일은 아빠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제주시 어딘가, 이제는 엄마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바닷가 어딘가의 여인숙에서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방이 너무 추웠는데 난방을 할 수 없어 밥 해먹을 때 쓰는 곤로를 피워놓고 벌벌 떨었다고 했다. 산모를 두고 바닷가로 빨래를 하러 간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 큰 언니는 울면서 바닷가를 돌아다녔는데 그때 언니 나이가 다섯 살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나를 낳고 삼칠일 만에 부모님은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요즘 부유층들이 한다는 원정출산 비슷하게 되었는데, 실상은 지지리도 고생스러운 원정출산이라고나 할까. 부모님이 제주도에서 한 가장 큰,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의미 있는 일은 그러니까 나를 낳은 일인 것이다. 


나이를 먹고, 제주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큰 감회는 없었지만 가끔 그곳에 갈 때면 "나는 제주에 가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게 여행으로, 일로 제주를 여러 차례 찾았지만 정작 엄마 아빠를 모시고 가볼 생각은 못했다. 아니 그동안의 내 삶의 방식이 엄마 아빠를 모시고 어딘가를 간다는 일과 맞지도 않았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드디어, 엄마와 두 언니까지 함께 제주 여행을 떠난다. 엄마랑 내가 함께, 힘들었던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요즈음 옛날 일기를 읽으며 과거를 돌아보는 엄마는 과거를 회상할 때면  종종 목이 멘 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나는 일부러 더 씩씩하게 대답을 하곤 하는데, 오늘은 왠지 제주 여행 얘기를 묻는 회사 동료에게 "저희 부모님이 제일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여행이 저랑 엄마한테 의미가 있기도 하죠."라고 말하다 마음이 울컥해왔다. 엄마, 이제 제주에서 힘들었던 일은 잊고, 행복한 기억만 남깁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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