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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원 꼭 가야하나요

미술감각은 학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by 오벳


“엄마 여기에서 그림 그리는 거예요?” 수업 첫날, 미리 도착해서 작업실을 한번 둘러보고 앉아있는 대기실. 아이의 눈빛에는 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루크야 들어가자. 어머님 궁금하시면 교실 창문 밖에서 살짝 보셔도 되어요.”

교실 안에는 아이 포함 3명의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간 아이는 조심스레 자리에 앉아 교실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수업 시작할게요. 여기 보세요.” 선생님은 시작을 알리며 아이들에게 칠판에 띄워진 우리가 다 알 듯한 명화의 그림에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순간 당황한 듯한 아이의 눈과 창 밖의 나의 눈이 마주치고, 난 애써 그 눈을 피하며 서둘러 대기실로 돌아왔다. 싸하고 뭔가 찜찜한 기분을 안은 채로.


수업이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엄마.” 아이가 대기실 앞에 서 있다. “엄마. 나 여기 안 할래. 싫어. 집에 가자.”라고 말하며 나의 손을 잡더니 집에 가자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대기실에 있는 엄마와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 둘에게 꽂힌다.


“수업 안 끝났어.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런 거야? “ ”아니. 집에 갈래. 안 할래. “ 어르고 달래도 도통 말을 안 듣는다. 상담을 해준 선생님과 원장선생님도 나와서 함께 아이를 달랬지만 완고하게 아니란다. 이대로는 모두에게 민폐가 될 거 같아 아이에게 알았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아무래도 수업은 어려울 거 같아요. 정말 죄송하지만 환불 부탁드립니다. 오늘 수업은 제외하고요.” 재빠르게 환불을 받고 후다닥 그곳을 빠져나왔다. 당혹감, 창피함과 함께.





누구에게나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있다. 그렇지만 미술 전공자가 아닌 이상 섣부르게 그림에 쉽게 접근하기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 또한 그랬듯이. 지역 맘카페와 주변엄마들에게 물어보고 나름 유명한 미술 교육원을 선택했다. 선생님과의 상담을 한 후에도 참 잘한 결정이라고 여겼다. 탄탄한 커리큘럼과 그림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교육을 추구한다는 설명에 이미 마음이 홀랑 넘어갔다. 이곳은 다른 미술학원과는 차별화된 교육을 진행하는구나 합리화를 하면서.


루크는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이였다. 언어로 해소되지 않는 부분을 그림을 그리면서 풀어내고,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림은 아이에게 자유로운 세계이면서 자기표현이었다. 그런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육이라는 방식을 들이밀며 주입시키려 했다. 그림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간과한 채.


미술은 배우고 익히는 학습이 아니다


미술 학원을 보내면 정해진 기준과 방식에 따라 수업이 진행된다. 미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내면 표현을 일관된 학습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맞는 방법일까. 그리고 학원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동일한 커리큘럼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그러한 시스템 아래에 만들어진 아이들의 작품에서 고유한 독창성과 남다름을 느낄 수 있을까.


학원에서는 같은 재료, 방식으로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거의 유사하게 닮은 모습을 지닌다. 색과 질감에 따라 느낌 한 스푼이 다를 뿐. 비슷한 결과물을 보고 있노라면 비교의 마음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부모는 학원을 오고 가면서 내 아이와 다른 아이의 작품을 비교하고, 더 잘 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에 집중한다. 그리고 내심 우쭐하거나 침울해한다. 역시 내 아이는 미술의 감각이 있어 아니면 아무래도 미술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라고 결론을 내리며. 정작 작품을 통해 봐야 할 아이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성 표현을 놓치고 만다.


미술을 하고 있는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활동과 결과물을 비교한다. 아이도 안다. 더 멋진 작품, 잘 만든 작품에 눈이 간다. 저 아이는 이렇게 했네. 그러니까 선생님의 칭찬을 듣는구나. 자신의 느낌의 표현보다 더 멋져 보이는 결과물을 쫓아가기에 바쁘다. 아이의 작품이 타인과 비교하는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작가의 느낌과 생각, 내면을 표현한다는 미술의 자유함을 잊어버린 채.


엄마로서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 했지만 실은 마음 깊은 곳에 욕망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림을 좋아하니 아이가 그림을 좀 더 잘 그리고 표현하면 좋겠다. 전문가로부터 아이의 미술 감각을 확인받고 인정받게 되면 뭔가 아이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학원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여기에서 배우면 아이도 이만큼 아니 이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 나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욕망에 아이는 뛰쳐나옴으로써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이후로는 미술학원을 가지 않았다. 내심 마음속에 첫 미술 수업의 실패에 대한 아픈 기억이 남아 있기도. 아이의 오티즘의 특성상 학원 수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 대신 원하는 미술 도구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스스로 원하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어느 때나 즐길 수 있도록. 종이와 연필만 있다면 두들링과 스케치를 한다. 어느 날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파스텔을 가지고 파스텔화를 그려본다. 클레이와 점토로 만들기도 하면서. 도구만 있다면 아이가 있는 어떤 곳이든 작업실이고 화실이 된다.


파란하늘에서 움직이는 바람의 모습


루크가 만든 사과 조소


즐거이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미술활동은 아이에게 있어 자신의 세계의 표현이자 삶이며 유희활동임을. 미술은 충분히 자유를 누리고 그 속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마음껏 표현하고 창작하는 활동의 즐거움을 누리며.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경험을 지나가며, 독특한 감성과 특징을 지닌 창조적인 예술가로 거듭나게 된다.


루크는 올해부터 그림을 배우기를 스스로 원했다. 이번에는 학원이 아닌 현직 미술작가 분에게 배우면서 함께 작업을 하는 중이다.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을 함으로써 아이의 개별적 특성에 맞추어 배움과 작업을 넘나들며 진행할 수 있다. 더불어 선생님과 아이의 소통이 깊어지고 작업의 밀도와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선생님의 예술적 가치관에 나도 많이 배우는 중이다. 스스로 자유로운 느낌을 깊이 향유하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미술 재료를 깊이 탐색할 수 있게 하고 어떻게 활용해서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지 아이의 의사에 맡기며 충분히 기다린다.


첫 한 달의 수업에서 선생님은 아이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주제를 정해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 과정을 지나가며 관계가 안정이 되어가고, 몰입과 집중의 작업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림은 빛이 나고 존재감을 발하게 되었다.


루크와 선생님의 호흡이 맞아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그림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거의 한달의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충분히 긴 시간의 자유로운 미술활동을 통해, 아이는 차곡차곡 자신만의 시선과 독특한 감성을 누리고 쌓아갔기에 가능했던 일. 이를 통해 창조된 아이만의 고유함과 독창적인 예술성 위에 맞춤형 교육이 들어감으로써 미술적 감각은 빛을 발하게 된다. 아이의 생각과 느낌을 마음껏 표현하고 누리게 하라. 더불어 정서적인 충족감을 맛보게 하자. 그러니 우선 자유로이 미술활동을 즐기게 하는 것이 어떨까. 무작정 미술학원부터 등록하지 말고.




모든 어린이들은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 이다.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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