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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Jan 23. 2024

 왕쫄보와 스파르타 교관 남편의 운전연수

 남편에게 운전 배우면 안된다고 했다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병이 있다. 이름하여 ‘조심조심병’. 내리막길이나 계단 등 만약 다칠 수도 있는 공간을 맞닥뜨렸을 때, 혹여 넘어질까 봐 최대한 긴장한다. 뭘 하고 있다가 뒤에서 탁 치면 아! 깜짝이야! 하고 화들짝 놀라기 일 수. (심지어 청소하다가 숨어있는 고양이한테도 깜놀. 이미 고양이가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왕 쫄보인 나에게 운전은 절대 넘사벽의 존재였다.



친정엄마는 늘 말했다. 운전을 하면 너의 세상이 넓어질 거라고, 엄마도 마흔이 넘어 가장 잘한 일이 운전면허를 딴 일이라고 하면서. 그럴 때마다 도시의 도로는 복잡하고 주차도 힘들다, 대중교통이 편하다 하면서 이리저리 핑계를 댔다. 실은 운전이 너무 무서워서 그랬지만. 그래서 지하철, 버스가 다니는 역세권 아파트를 사랑하고 그런 곳들만 골라 이사를 했다. 대중교통으로 여기저기 갈 수 있다고 꿋꿋이 아기띠와 유모차로 아이와 다니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일. 결국 차가 없으면 안 되는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운전면허는 필수가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에 등록 필기시험은 가뿐하게 통과했지만. 기능, 주행연습을 하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운전할 수 있겠냐고 타박 아닌 타박도 했더랬다. 그래도 운전면허는 한 번에 패스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도로에 나가는 것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운전하며 신호도 보고 네비도 볼 수 있을까. 만약 차를 끌고 길을 나서다 갑자기 차가 멈추면 어떡하지? 눈치를 보고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을 잘할 수 있을까?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애물이 있으면 어떡하지? 괜히 내가 운전하는 차로 다른 차에게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도로 위를 달리며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그려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조심조심병은 괜한 일을 그려내고 떠올리게 한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쫄보인데.





이제는 당신이 운전해 봐
언제까지 나만 운전해야 해.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차키를 건넸다. 면허 따고 바로 안 하면 감 떨어진다, 직접 해봐야 운전실력이 늘어난다, 이제 어디 갈 때 나도 조수석에서 편하게 가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결국 차키를 건네받았다. 첫날,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버벅 거리기는 했지만 마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남편은 그거 봐라 하면 된다니까, 천천히 가면 된다고 하며, 자기가 안 탔을 때도 꾸준히 연습하란다. 그렇게 동네 길, 마트 가는 길로 그 반경을 넓히며, 동네 길에 약간의 자신감과 익숙함이 쌓여갔다.



이제 다음 레벨을 가야 한다 여겼던 걸까. 어느 날 남편은 고속도로 운전도 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절대 안 하게 된다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리를 바꾸잔다. 자리를 바꾸며 어찌나 쫄리던지. 네비에 들려오는 음성을 들으며 나름 속도를 맞추어 3차선에서 달려가다가 옆에 쌩 지나가는 차에 깜짝 놀라고. 네비에서 나가라는 도로를 놓치면서 멘붕이 오기도.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핸드폰을 하다가 심지어 잠까지 자는 것이 아닌가.



다음번 휴게소에서 자리를 바꾸며 아니 내가 운전하는 데 어떻게 잠이 오느냐 긴장도 안되느냐 불평을 했다. 그럼에도 태연하게 남편은 길은 다 이어져 있으니 어쨌든 나오게 되어있다, 길을 놓치면 다른 길로 들어가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하면 길도 보이고, 네비도 들을 수 있단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남편이 어찌나 얄밉던지. 그때는 정말 야속했지만 남편의 스파르타 교육 덕분에 운전에 더 빨리 적응하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남편의 큰 그림이 있었을지도)



이제 서울 운전도 가능한 왕쫄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먹으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네비를 들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되고, 언제 빠져야 되는지 머릿속에 그려보며 미리 차선을 변경하기도 하고. 그렇게나 어려웠던 차선 변경도 눈치껏 하게 되었다. 더불어 운전해야 누리는 즐거움도 누리는 중이다. 올림픽대로를 타며 한강을 지나기도 하고, 노래로 듣던 양화대교를 건너며 노을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는다. 강변북로를 지나가며 다채롭게 빛나는 불빛을 좋아하는 아이와 즐겁게 드라이브를 하며 돌아오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조심조심 병을 지닌 쫄보 운전자이기도 하다. 앞에 급정거하는 차에 놀라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멈칫하고, 버스와 트럭이 옆에 있으면 후다닥 도망치듯 피해버린다. 그럼에도 쫄보가 이렇게 운전을 하게 된 데에는 10에서 7할은 일단 해봐를 외친 남편 덕분이겠지. 이 자리를 빌려 훌륭한 운전 교관인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려 한다.




여보! 운전할 때 옆에서
훈수 두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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