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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Feb 01. 2024

남편이 골프에 빠져버렸습니다

골린이 남편을 응원합니다



“ 나 끝나고 골프 연습하고 갈게. “


매일 남편 루틴 중 하나. 퇴근 후 골프 연습. 올해 초부터 골프를 배우겠다 열심이다. 얼마 전까지 관심 없다고 질색하더니. 막상 시작하니 푹 빠져버렸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골프. 그렇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골프이야기를 한다 툴툴대었다. 주변 지인들도 상당수 골프를 치고, 자기만 안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40대 중반에 들어서 골프를 시작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퇴근 후 아무리 힘들어도 연습을 빠지지 않는다. 술자리 약속을 미루는 한이 있어도.






그렇다. 그는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앞뒤 가리지 않는다.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성향. 몰입도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승부욕은 또 어떻고. 시작하면 어찌 되었건 결판은 지어야 한다. 대학생 때 RPG 게임에 집중하다 학사경고 직전까지 갈 정도로. 끝내 길드장까지 맡는 상위 0.3%에 드는 레벨을 이루었다는 무용담이 농담이 아님을. 살아보며 실감한다.





한편으로는 회사와 집 이외에 다른 취미를 즐기는 남편의 모습에 안도감이 들기도. 몇 년 전 남편에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힘든 시간이 있었다. 배신감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우울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가정 경제까지 위협할 정도로 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언젠가는 글로 쓸 날이 오겠지, 지금은 밝히지 못하지만. 아직도 관련일로 소송이 계속되는 중)



거의 쓰러질 뻔한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다름 아닌 운동. 퇴근 후 매일 헬스장 출근을 했다. 식단과 더불어. 한동안 우리 집 고정 메뉴는 닭가슴살이었다.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이었을까. 다시 살아낼 힘을 얻었다. 무너져 있던 자존감은 그전보다 단단해졌다. 더불어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쏙 들어간 뱃살과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 약을 끊을 정도로.






집에 와서도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자세 교정을 한다. 수업 후 복습까지 철저하게. 골프 깜깜이인 나에게 자세는 이렇게, 코어의 힘, 회전력이 중요하다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길쭉한 물건은 죄다 휘두른다. (우리 남편만 그러는 거는 아니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다가 집중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발견한 몰입의 즐거움. 이보다 더 삶에 에너지를 주는 게 있을까. 하나에 오롯이 빠져 있다 보면 시간도 어찌 가는지 모를 만큼. 일 이외에 나 자신을 위한 활동에서 누리는 활력은 좋은 자극이 된다. 나도 꽂히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불나방이기에. (요즘은 글 쓰고 독서하며 집에서 은둔자 저리 가라 할 정도니) 이해된다. 몇 년을 같이 살다 보니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맞다.





이러다가 20대 길드장을 맡았던 혈기로 모임 하나 만드는 거 아닌지. 뭐 어떤가. 새로운 도전으로 활력을 지니게 되었으니. 골프 하는 남편, 글 쓰는 아내. 40대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해 봅시다. 부디 골프 오래오래 즐겁게 해요. 우선 날씨 따뜻해지면 머리부터 올리러 다녀오고요.




당신의 슬기로운 골프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미지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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