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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Feb 08. 2024

명절마다 남편은 시댁 부엌에 섭니다

장금이 남편 시댁 부엌 정복기



남편은 미식가이다. 평소 천천히 음식을 즐기며 고유의 맛을 즐긴다. 쉬는 날에 즐기는 저녁식사는 최소 2시간이 기본. 배가 부르면 바로 숟가락을 놓아버리는 나와 다르다. 그런 남편에게 취미가 있는 데 바로 요리하기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레시피를 보고 비슷하게 따라 한다. 맛집 음식을 먹어보고 며칠 후 비슷하게  만들어 내기도. 유튜브에서 찾아낸 레시피에 자신 만의 노하우를 더해 또 다른 맛을 만들어 낸다. 장금이 입맛을 지닌 남편은 음식 간 밸런스도 절묘하게 잘 맞춘다. 나보다 훨씬 요리를 잘한다. 사실인 걸 뭐.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남편이 요리에 관심이 있었냐고? 아니다. 결혼 후 남편은 부엌에 서본 적도 없었다. 준비한 음식을 상에 차리는 정도. 그랬던 그가 요리에 눈을 뜨게 된 데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향이 크다. 한동안 남자들이 요리를 하거나 셰프들이 냉장고의 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더랬다. 처음 선보인 음식은 참치김치찌개. 두부와 김치, 참치를 듬뿍 넣어 끓인 김치찌개는 칼칼하면서 깊고 진한 맛이 일품. 내가 끓인 찌개와는 또 다른 맛의 어우러짐이 느껴졌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쌍따봉을 날리니 기분이 좋았나 보다. 이후 부엌에 자주 서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날로 날로 요리실력도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시댁에서 한 달에 한 번은 밥을 먹기로 하면서 (전화를 자주 드리는 일보다 낫다고 여겼다) 시어머님과 함께 상을 차리는 일이 많아졌다. 시어머님은 나이가 드시면서 오래 서 있기가 힘든 분. 점점 음식 준비를 버거워하셨다. 옆에서 보아도 그리 요리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외식을 선호하셨던 걸지도. (솔직히 음식 맛도 입맛에 맞지 않아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다)



현재 며느리가 한 명이니 자연스럽게 요리는 내 차지. 어머님이 준비한 재료로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고 정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녀오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어 그날 밤엔 앓아눕기 일 수였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옆에서 조금씩 정리와 상차림을 도와주던 남편은 안 되겠는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렇게 남편의 숨겨져 있던 요리 실력이 시댁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부엌에 서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님은 적잖이 당황하셨을 듯. 아버님도 어머님께서 음식을 준비하고 나서야 나오셔서 수저, 젓가락을 놓으시는 정도.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가족 모임을 보아도 부엌에서 요리한 남자는 없었다. 얼마나 낯선 모습이었을까. 평소 집에서도 자주 요리를 하냐는 시어머님의 물음에 남편이 대답한다.



“요리 재미있어요. 내가 좋아서 자주 하는 건데 뭐 어때요. 같이 준비해서 맛있게 먹으면 더 좋잖아요. 안 그래요?”

신나게 웃으며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님은 못내 입을 다무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이야기했다. 그동안 며느리 혼자 음식하고 정리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기는 게 너무 싫었다고. 왜 당신만 맨날 고생해야 하는 거냐며. 일부러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하려고 더 오버해서 말을 했단다. 이렇게 남편은 나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중.






이후 시댁모임에서 식사준비는 우리 부부가 전담을 하게 되었다. 시부모님도 이제는 그려려니 하는 눈치다. 장금이 아들의 손 맛으로 차려지는 음식의 맛과 요리하는 즐거운 모습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신다. 더불어 남편의 행동으로 음식 준비는 며느리, 여자들의 몫이라는 편견이 깨지면서. 이제는 남자들도 함께 상을 차리고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흐름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가족 모임에서 외식의 비율이 더 늘어나게 되었으니 더 좋은 게 아닐까.



남편의 특제 양갈비와 연어 숙성회



이번 설날에는 오랜만에 시댁에서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남편 만의 특제 양갈비와 연어 요리를 계획했다. 며칠 뒤에는 시댁에서 부엌 지킴이가 되어 우리 부부는 요리를 하고 있겠지. 호흡을 맞추어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 기대된다. 남편의 특제 음식을 먹으며 시댁 식구들의 놀란 토끼눈을 볼 기대에 마음이 설레는 난. 남편을 부엌에 서게 하는 못된 며느리이자 아내이다.






남편! 이번 명절에도
요리를 부탁해요
난 요리 보조를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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