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아이, 그림을 만나다
새하얀 벽 위에 걸린 색색의 다채로운 그림. 각각 스토리를 품은 캔버스가 나란히 벽에 걸려 있다. 그림과 그림 사이로 아이는 자유로이 거닐며 멀리에서 보기도,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어떤 지점에서는 화폭에 담긴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는다. 엄마 이거 봐바요 하면서 전달되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간다. 처음이었다. 그림을 보며 반짝이는 아이의 눈을 마주함이.
“엄마. 나도 그림 그려서 형아처럼 전시하고 싶어.”
“그래? 그럼~ 우리 루크도 언젠가 할 수 있을 거야.”
전시회를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여운에 젖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땐 몰랐다. 우리 앞에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날 이후 아이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길 원했다. 혼자서 끄적거리는 낙서(두들링)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놀이를 넘어선 다음 단계의 성장이 필요했다. 전시회에 방문한 인연으로 오티즘 홈트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아이의 미술에 대해 Y작가님과 상의를 했다. 물론 아이와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 루크와 미술 학원을 갔다가 대차게 까인 전력이 있기에) 작가님은 현직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S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고, 본격적인 그림 수업이 시작되었다.
흔히 장애 아이들은 발달 센터에서 미술치료를 통해 처음 미술을 접근을 한다. 심리적인 안정과 치유가 목적이다 보니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미술에 한계가 있다. 특히 자폐스펙트럼의 경우 배운 그대로 학습하고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기에 미술을 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생각처럼 그 틀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루크의 경우 미술치료의 경험이 전무했고, 학습으로서 미술을 배우지 않았기에 시작을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더욱 중요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에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내심 있었다.)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매개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술매개자는 가르치는 선생님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곁에서 서포트하는 이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장애예술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예술 작업을 통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선생님과 부모는 원활한 소통을 하며, 아이의 세계관과 방향성을 중심에 두고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마치 아이를 가운데 두고 선생님과 부모가 3인 4각 경기를 하는 것처럼. 물론 경기를 주도하는 힘은 아이에게 있어야 한다. 곁에서 선생님은 긍정적인 자극으로 작품과 내면세계가 확장되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부모는 외부에서 둘의 작업과 관계가 긴밀하게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근래에 이들을 장애예술매개자라 지칭하며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매주 한번 홍대에서 미술 작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어느 정도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 안 사실로 1분 작업, 2분 휴식 다시 1분 작업이 계속되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선생님은 아이와 온몸으로 부딪히고 진심으로 마주했다. 감각이 예민하기에 손에 묻어난 오일파스텔로 어쩔 줄 몰라할 때 예술가의 손을 닮았다 하니, 그제야 오일파스텔 작업의 두려움을 넘어섰다. 자극을 주고 내면 깊이 감추인 영감을 끄집어내고자, 음악을 틀어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선생님의 배려와 노력으로 자연스레 작업실의 분위기에 적응하였고, 함께하는 작업과 호흡에 익숙해졌다. 낯선 누군가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같이 작업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마침내 1시간을 내리 앉아 그림을 그렸던 날, 선생님과 난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작업은 안정되었고 자연스레 몰입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안정적인 작업을 통해 점차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이와 충분한 교감을 나누면서 장애를 깊이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질적 특성이 장애에서 비롯되었다 여기고 바라본 것은 나였음을 고백한다. 선생님과의 작업을 통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기존에 품고 있던 장애라는 틀을 벗어나, 바라보고 있던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졌다. 있는 그대로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 예술가 루크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림으로 아이는 스스로 서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생각과 느낌이 독특한 선과 형태, 다양한 색을 만나 매력적인 감각으로 탄생했다. 주도적인 작업을 유도함으로써 자존감이 자라나고 뿌리가 단단해지고 있다. 몇 달의 작업 과정을 지나가며 어느새 자신만의 느낌과 표현을 담아내는 단계에 접어들어 갔다. 이제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품고 밝은 에너지를 담은 루크 만의 화풍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뜻함과 행복을 드리우는 그림으로.
예술을 만나 아이의 세계는 자라난다
예술은 꽃과 같아서, 그 식물을 완성시키고 성장을 끝내게 하지만, 동시에 그 식물의 본질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존 에딩턴 시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