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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제 널 가족으로 인정할게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방문기

by 오벳


“ㅇㅇㅇ 보호자 분. 아이와 함께 들어오세요.”

하얀 벽으로 둘러 싸인 공간. 어린아이부터 교복 차림의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 부모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자신의 이름이 언제 불릴지를 기다리며. 아이들의 말소리, 울음소리에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모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파리한 긴장감이 감돈다. 우리가 있는 여기는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대기실. 그렇다. 오늘 루크의 검사 결과가 나온다.


아이의 자폐스펙트럼을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전문가를 만나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는 상당히 긴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히 아이의 장애를 온전히 마주할 정도의 마음의 힘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첫 진료를 보고 풀배터리 검사와 ADOS검사를 진행할 때에도, 밖에서 기다리며 불안과 두려움을 애써 누르며 버텨냈다. 이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과정임은 분명했기에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 고통의 길일지라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는 용기의 주문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루크랑 루크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교수님은 마스크 너머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요즘의 근황을 물어보고 아이를 내보낸 후, 조심스럽게 검사결과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예상 대로 아이는 자폐스펙트럼이었다. 그렇지만 검사결과 각각의 편차가 너무 커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 처음 본 선생님과 검사를 진행했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보다 인지, 지능 관련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와 정확한 검사 결과인지 의심이 된다고.

“어머니 루크와 잠시 이야기를 해 볼게요.”

교수님은 나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잠시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문 밖에서 서 있는 동안 혼란스러운 머리와 마음을 붙잡으며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간절한 기도뿐.


“이제 들어오셔도 되어요. 엄마와 이야기할 동안, 루크는 잠깐 밖에서 기다려줄래?”




아이의 다름을 발견하고 많은 부모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소아정신과의 문을 두드린다. 정확한 검사와 진단을 위해 대학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아, 유명한 대학병원 교수님의 경우 몇 년간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 아이를 향한 부모의 절박함과 함께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은 지 안타까우면서, 나 역시 그러한 부모들 중 하나이기에 그 애타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교수님을 만나 진료를 받아도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기까지, 다시 몇 달의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 시간을 지나며 부모의 남아있는 마음은 점점 까맣게 타들어 간다.


아이의 진단이 나오면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다. 어떤 부모가 처음부터 아이의 장애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상당수의 부모들이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또 다른 의사, 병원을 찾으며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설마 아닐 거야 라는 절박함과 정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두려움을 품고. 감당하기 현실 앞에서 부모의 마음은 깊은 상처를 입고 무너져 간다.



따지고 보면 진단은 진단일 뿐, 그저 아이에 대한 단편적인 부분이다. 그보다는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앞으로 아이와 부모가 어떠한 길을 나아갈지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제에 얽매이다 보면 정작 아이에게서 발견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을 놓치게 된다. 아이의 장애 진단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대로 꾸준히 어제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는 중이기에.




루크는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보입니다


교수님은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려운 단어를 인지하고 활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냈음에 주목했다. 검사 결과 편차가 심했기에 아이의 기능 척도를 완전히 보여줄 수 없다고. 아이의 심리적인 상태, 검사 과정의 집중도에 따라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동행동과 약간 높은 목소리의 톤, 대화 시 상호작용의 미흡과 더불어 모든 검사상 자폐 점수는 현저히 높게 나왔기에 자폐스펙트럼임에는 분명하다. 아직은 아이가 한창 성장하는 중이니 추후에 다시 검사를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며, 장애의 진단과 등록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었다.

“어머님. 루크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루크가 참 밝고 해맑아서 너무 좋아요. 검사상으로도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아이라 힘들었을 텐데... 부모님 두 분의 사랑과 따뜻함이 루크에게도 느껴집니다. 정말 잘하고 계세요. 저희는 다음 진료에 다시 만나요. “


마지막에 덧붙여진 교수님의 따뜻한 말과 응원에 긴장되어 있던 마음이 순간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지난 몇 번의 진료를 통해 워낙에 직설적으로 뼈 때리는 교수님의 말로 호되게 아팠던 경험이 있기에) 몇 달 뒤 진료예약을 잡고 허둥지둥 병원을 빠져나와 차 안에 앉자마자, 결국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운전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동안, 옆에 있던 루크는 한쪽에 있던 휴지를 꺼내 손에 들고 있었다.

“엄마. 울지 마. 엄마가 울면 나도 슬퍼져요. “

“응. 알았어. 엄마 안 울게. “

휴지를 받고 나서도 한동안 아이를 꼭 안고,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


실은 가장 필요했던 말이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장애는 피하고 숨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장애라는 굴레의 아픔과 어둠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아이아빠는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지난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앞으로의 시간을 바라보기로 했다. 더 따뜻한 말, 스킨십, 표현으로 감싸고 안아주었다. 부족함 보다는 가능성을 바라보았고 집중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그 순간, 아이가 오롯이 느끼는 행복과 안정이 우선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분으로부터 전달된 응원의 메시지에, 우리의 지난 시간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물론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도 있었다. 그 시간은 우리를 낮아지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장애의 진단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견고한 마음을 다지게 했다.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그 안에서 더욱 하나가 되고 단단하게 묶였다. 여느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아이에게 끝까지 힘이 되어주고 응원해 주는 부모가 되기로 다짐하면서. 삶을 다르게 바라보고 소망을 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장애를 양가의 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루크는 학교 내의 특수학급을 들어가게 되었다. 주변 환경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의 방향 자체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장애는 아이의 일부이자, 앞으로도 우리와 계속 함께할 가족이기에.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못 보곤 한다

헬렌켈러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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