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치밀한 계획 덕분입니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으며 올라선 저울. 깜빡이면서 계속 올라가는 숫자에 눈을 의심했다. 난생처음 보는 두 자리의 숫자. 짧은 탄식과 비명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과 함께.
경계령이 울려도 진작 울렸어야 했다. 살은 서서히 그 존재를 늘려가고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자연스럽게. 남편이 이제는 살 빼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때에도 코웃음을 쳤다. 다이어트로 닭가슴살을 먹는 그 옆에서 뽀시락 뽀시락 빵 봉지를 뜯으며. 몸이 그러면 못쓴다, 어디 아픈 거 아니냐 핀잔과 염려를 하는 친정엄마의 말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억울했다. 내가 먹방 하는 사람들처럼 많이 먹는 거도 아니고, 입도 짧아 오래 먹지도 않는데. 왜 자꾸 나에게만 뭐라고 하는 거야.
나에겐 그럴듯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5개월 즈음에 발병한 갑상선 저하증. 나았다가 다시 재발하기를 반복하면서 만성 질환이 되어버렸다. 평생 약을 먹고 함께 가야 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이 병이 지닌 최대 부작용은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부종이 심하다는 거다. 그리고 부종은 결국 살로 이어진다.
그런데 가만히 있었냐고? 아니. 노력도 했었다. 6년 전 PT와 식단을 통해 체중을 감량, 다시 원래 몸매를 돼 찾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점점 심해지는 우울증, 고된 독박 육아로 삶은 힘겹기만 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건, 함께 해준 육아 동지 엄마들. 그 들과 함께 나누는 술 한잔과 맛있는 음식이었다. 늦게 퇴근한 남편과 같이 했던 야식 시간도 빼놓을 수 없지.
잠시 마음의 위로는 되었을지 몰라도, 몸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남아 버린 것은 부어버린 몸뚱이, 두리뭉실한 두 턱, 푸짐한 배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이제는 난생처음 보는 몸무게도 추가되었다. (요요가 오면 그 이상으로 무게가 늘어 남을 잊지 말자)
어느 날, 남편은 더 이상 잔소리로는 안 되겠는지 저울을 주문. 거실 중간 길목 한 편에 놓아두었다. 며칠 동안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스쳐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남편이 출근한 틈을 타 살그머니 올라간 저울 위에서. 두둥! 현타를 제대로 맞아버렸다. (수고했어요. 당신의 충격요법이 통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문제였다. 일정하지 않은 식사시간에 이어지는 몰아먹기. 밤늦게 팬트리를 열어 꺼내먹는 간식들. 달콤 짭짤한 과자, 쿠키를 사랑했다. 보드랍고 촉촉한 빵은 어떻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오는 길, 한 손에는 빵 봉지가 함께 했다. 땀이 나는 게 싫어 운동은커녕, 걷고 뛰는 일도 피했다. 그렇게 삶의 패턴은 천천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나를 방치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울 위에 서서 망연자실하게 숫자를 바라보며 후회했다. 인생 최대의 몸무게와 불어날 대로 불어나 버린 몸으로 예전에 입었던 옷들 중 상당수는 더 이상 입을 수 없다. 아이와 사진을 찍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40대로 들어서버린 이 몸뚱이를 이렇게 버려두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과 함께.
프로 요요러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빵, 튀김, 군것질을 끊었다. 매일 두 시간씩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있다. 코웃음 치던 닭가슴살과 친해졌고 야채, 현미밥을 중심으로 탄단지 식단도 함께 병행. 식단으로 외식도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과 약속도 줄어들었다.
삶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는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하고, 밥 먹고, 책 보고 글을 쓰고 있다. 더불어 놀라운 변화가 삶에 찾아왔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약간의 스포를 해보자면.
약 한 달 반 정도 지난 현재 10kg을 감량했다. 안 맞았던 옷들이 맞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곰에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꾸준히 루틴을 다 잡고 나 만의 삶의 리듬을 찾았다. 더불어 최근엔 브런치 에세이 크리에이터로 선발되어 기쁨을 누리는 중.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시죠?
그 이야기는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메인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