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발견한 예민함
어느 기분 좋게 외식을 하는 날.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이제 막 수저를 들려고 하는 순간. 어김없이 루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너 진짜로 먹을 수 있어? 다른 거 먹지. “ 몇 번을 확인을 하며 물어보았고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시켰다. 막상 음식이 나오고 머뭇거리면서 겨우 한 입 먹더니 바로 수저를 놓는다. 냄새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식감이 이상해서, 먹으니 막상 맛이 별로라서 참 이유도 다양하다. 그 자리에서 왜 안 먹냐, 먹어봐라, 네가 먹는다고 하지 않았냐 실랑이를 하면 간만의 즐거운 외식의 흐름이 끊긴다. 밖에서 밥을 먹다 보면 비일비재한 일이기에 이젠 나도 어느 정도 짬이 생겼다고나 할까.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김 한 봉지를 꺼낸다.
“사장님. 여기 공깃밥 하나 주세요.”
루크의 예민한 입맛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유식 단계에 들어서면서 한 번은 죽 집에서 아기죽을 사 와서 먹였는데, 한 입을 먹는 순간 바로 혀로 빼꼼 밀어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유식을 한 번에 넉넉히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데워주니, 먹는 순간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해버리는 모습에 직감할 수 있었다. 아. 편하게 밥 먹이기는 글렀구나.
시댁 식사 모임에서도 까칠한 입맛으로 애를 먹는다. 그나마 국수메뉴가 있으면 안심. 없으면 공깃밥과 비상 김으로 때운다. 시어머님이 잘라주는 고기와 반찬은 한 입 먹고 조용히 밀어내기 일 쑤. 제대로 안 먹었으니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배가 고프다며 짜증을 내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입이 짧은 것은 절대 아니다. 세 식구의 집 한 달 쌀 8kg의 대부분은 루크의 입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나보다 밥을 더 먹는데도 어째서 살이 찌지 않는지) 집에 있으면 계속 냉장고, 간식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입이 심심하시단다.
“엄마 오늘은 새우를 넣은 오일 파스타가 먹고 싶네요.” “빨간 양념의 제육볶음이 생각나네요.” “능이버섯이 들어간 백숙이 먹고 싶어요.” “아프니까 전복죽을 먹어야 될 거 같아요.” 어찌나 주문도 많으신지.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요청하는 아이 덕분에 요리는 날로 날로 늘었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이 제일인 집밥돌이 덕분에 오늘도 나의 손과 주방은 쉬지 못한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루크의 예민한 입맛에 대해 하소연하는 나에게 남편이 덧붙인 한 마디.
루크 예민한 입맛은 당신의 입맛이랑 똑같아. 당신도 입맛 엄청 예민하잖아.
싫은 거는 절대로 안 먹지.
그 말에 절대 동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도 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입맛의 보유자이다. 단무지, 치킨무의 냄새와 맛이 너무 싫어서 치킨이나 중국 음식을 시킬 때 ‘치킨무는 빼고 주세요. 단무지 주지 마세요.‘라고 꼭 메모를 남긴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지만 그 시큼한 냄새와 맛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그래서 학교 소풍 때 엄마는 김밥을 먹지 않는 딸을 위해 볶음밥을 싸주었다. 그래도 지금은 장족의 발전을 통해 김밥은 먹게 되었지만.
분식점을 가면 반찬은 주지 말라하거나, 나온 반찬은 도로 드리고 시킨 음식만 먹는다. 특히 향에 민감해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들 중 홍어, 과메기, 젓갈류 등은 접시를 구석으로 치우던지 멀리 떨어져 앉는다. 그래서 홍어를 좋아하는 남편은 아예 접시를 밀봉해서 먹을 때마다 꺼내먹거나 내가 없을 때 먹는다. (우리만의 암묵적인 룰이기도)
또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김치. 유일하게 친정엄마의 김치만 먹는다. 다른 집 김치나 식당김치에는 도무지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친정엄마의 전라도식 김치가 너무 맛있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여전히 지금도 시댁에서 김치를 못 먹는다. 아니면 한 입 만 먹고 맛있게 먹은 척을 하거나 후다닥 먹고 제일 먼저 일어나 버린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루크도 요즘 김치에 눈이 뜨이면서 먹기 시작하는 중. 그렇지만 날 닮은 입맛이 어디로 갈까. 아이가 먹는 김치는 유일하게 친정엄마표 배추김치이다. “할머니. 할머니 거 김치가 제일 맛이 있어요. 할머니 김치 없으면 안 돼요.” 라며 엄지 척을 날리는 루크 덕분에 친정엄마는 올해도 김장을 쉴 수가 없다.
오티즘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감각의 예민함이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들이 이들에게는 보통 사람들보다 몇 십배는 더 크게 느껴져 고통처럼 다가올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거부나 회피, 짜증 등으로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전에는 아이가 음식에서 보이는 민감한 반응들을 그저 오티즘의 특성으로만 생각해 왔었다. 그렇지만 루크의 입맛의 예민함은 오티즘으로 인함 보다는 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실제로 나의 어릴 적 편식은 어마어마해서 5살이 될 때까지 거의 밥을 먹지 않았고, 먹어도 거의 죽이 될 정도로 입 안에 물고 삼키지 않았다는 친정엄마의 피셜을 듣고 확신하게 되면서)
오히려 오티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상당수는 예민한 기질을 아이의 개성이 아닌 오티즘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오티즘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 결국 내 아이의 개성을 그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 좀 더 자세히 아이와 자신을 들여다 보고 예민함의 닮은 부분을 찾아보자. 서로 함께 지니고 있는 예민함의 교집합을 발견함으로써 아이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공통된 예민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난 비로소 아이의 장애를 좀 더 유연하게 대하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노력하리라
다이애나 루먼스 (내가 만일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커버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