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맞이 삶의 대청소 중입니다
서늘한 가을의 기운이 성큼 찾아왔다. 뜨겁게 기세 등등 했던 여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완연하게 바뀐 날씨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이제 2024년도 두 달 남짓 남았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미루어 두었던 숙원 사업인 대대적인 ‘집 안 정리’를 해야 할 때이다. 이번 여름은 유달리 힘들었다. 덥고 습한 공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쏟아졌다. 슬슬 갱년기가 찾아오는 건가. 체력 소모를 줄이고 움직임을 최소화하고자, 짐을 이리저리 테트리스 하듯 끼워 맞추고 있었다. 이마저도 넘쳐 나름 창고방이라고 정한 곳에 쑤셔 박았다. 방문을 열 때마다 밀려오는 답답함에 바로 닫아버리고 말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그래. 본격적인 정리를 해야겠어. “
정리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비움‘이다. 버리고 비워내야 공간과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이번 집 안 정리는 주로 비움을 실천하기로 했다. 서둘러 빨리 끝내려 하지 않는다. 매일 짬을 내어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골라내어 버리고 있다. 거진 쓰레기 한 봉지 분량의 물건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언제 다시 입을지 몰라하고 고이 보관해 둔 옷부터 꺼내 들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내려 바닥에 펼쳐보았다.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 이런 옷을 내가 입었단 말이야? 작년까지만 해도 오버핏을 좋아하고 즐겨 입기는 했지. 불어난 몸을 적당히 몸을 가려주면서 분위기가 있는 옷들이니까. 하지만 올해 초 시작한 다이어트로 한 사이즈가 넘게 줄어들어 버렸으니 어쩌나. 다시는 입을 수 없는 옷들이 되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미련 없이 큰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래.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서랍 속에 보관했던 화장품들도 죄다 꺼냈다. 즐겨 사용했던 제품부터 선물 받은 것, 샘플로 받았던 것들까지 서랍장에 한 가득이다. 하지만 올해 초 주사피부염이 생긴 이후부터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브랜드에 값비싼 명품 화장품은 아깝지만,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너희들도 안녕이다. 잘 가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은 버리고, 괜찮은 것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책장에 나열된 책도 빼놓을 수 없다.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훑어내듯 살펴보았다. 인문, 과학, 육아, 자기 계발, 신앙 등등. 의외로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 읽지 않을 책들을 골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어마어마하게 많다. 심지어 사두고 안 본 책들도 상당수다. 그중에서 육아서는 폐기 1순위 목록이다. 과거의 난 왜 그렇게 육아서에 목을 매었던 걸까. 책으로 육아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다음 타깃은 자기 계발서이다. 나름 유행하는 책들을 읽어봤다. 지나고 보니 제일 돈이 아까운 책이더라. (이건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어쩌면 난 마케팅에 넘어갔던 거 같다. 책을 읽으면 변화가 시작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남의 자기 계발에 대해 읽어봤자,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더라. 이번엔 이 두 분야의 책들이 주된 정리 대상이 되었다.
이외에도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목적을 잃고 한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들이다.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있어야지. 나중에 쓸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지니던 물품의 대부분은 이후에도 쓰지 않는다. 어째서 움켜잡고 있었을까. 실은 이 짐들이 나의 잠재적인 불안이라는 걸. 정리를 하면서 깨닫는 중이다. 이제야 불안과 과감히 이별하는 용기를 내어 본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의 시선에 전전 긍긍하며 살아왔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더 예민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눈앞에 쌓여 있는 짐들은 결국 나의 쓸데없는 미련이자 걱정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뭐든 붙잡고 채워놓아야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놓치면 끝나 버릴 줄 알았다. 그땐 그게 우리를 단단하게 보호해 줄거라 여겼다. 겉으로는 밝은 척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실은 괜찮지 않았다. 짐에 허덕이며 점점 침식되어 가는 건 나였다.
비워냄으로 단순해 지기로 했다. 소유에서도 관계에서도. 물건을 비우면서 남아있는 미련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비워내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짐을 떨 쳐 보내듯 관계에도 억지로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비워낸 그 자리에 나를 더 채우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만나고 싶은 이들을 만나며. 마흔이 되니 비로소 보이더라. 내가 곁에 두며 소중히 대해야 할게 무엇인지. 그게 나를 사랑하는 일임을 말이다.
심플한 삶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너무 많이 소유하려는 것을 멈추자
그러면 자신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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