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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Sep 12. 2024

밥과 김을 먹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글테기 극복하고 있습니다



뜨겁고 치열했던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을 넘는 중. 아침저녁 공기에서 선선함이 느껴진다. 여전히 한낮의 해는 뜨겁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는 아니다. 이번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 워낙에 더위에 약하다 보니 외출도 쉽지 않았다. 한 풀 꺾인 여름 기세에 긴장이 풀린 걸까. 결국 몸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입맛이 사라졌다.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 꼬르륵 울리는 뱃속 신호에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간다. 눈에 띈 친정엄마표 멸치 볶음. 반찬이 담긴 통을 꺼내어 밥을 담고 김을 챙겨 뒤늦은 아침상을 차린다. 바삭한 멸치볶음에 밥 한 술. 바스락 김 한 장을 얹어 밥 한 술. 다시 멸치 볶음에 밥 한 술. 천천히 밥 한 공기를 겨우 비워낸다.






멸치볶음을 먹으면 어린 시절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밥상을 차려주고 당신은 물에 만 밥에 꽈리고추 멸치조림을 얹어 먹고는 했다. 애써 만든 맛난 반찬을 놔두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맛있는 반찬들이 있는 데 왜 멸치인 건지. 이제 엄마의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겠더라. 하루 종일 살림하랴 식사준비하랴 종종걸음으로 다니다 보면 밥을 먹는 것도 힘든 일이다. 게다가 뜨거운 열기 앞에서 요리를 하고 나면 이미 음식 냄새에 질려버린다.




그럼에도 맛있게 먹을 가족들을 위해 엄마는 갓 지은 밥과 반찬을 상에 올렸다. 엄마의 수고와 사랑이 담긴 마음을 먹는 가족의 모습. 이는 그녀에게 세상 어떤 것보다 맛있는 반찬이었을 것이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님을. 엄마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김을 먹으면 늘 아이가 떠오른다. 김은 아이가 애정하는 필수 반찬. 장애 아이 특유의 예민한 입맛을 충족시키는 몇 안 되는 반찬 중 하나이다. 매번 따뜻하게 음식을 만들어도 고개를 도리도리 돌려버리기 일쑤. 김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외식은 고역이었다. 다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김과 밥만 먹는 모습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렇게 외식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지나고 깨달은 건 아이에게 그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자 공포였다는 거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낮선소리와 사람들 만으로도 이미 긴장상태인데 새로운 음식이라니. 그나마 익숙한 김이 있었기에 안도감을 느끼며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맛, 익숙한 맛의 힘에 아이는 의지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다양하고 자극적인 맛에 거부감이 들었다. 기름지고 진한 음식을 먹으면 여지없이 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외식을 하면 어김없이 신호가 온다.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친 몸에 필요한 건 단순하고 부드러운 힘이다. 밥과 김, 멸치가 주는 단순하지만 따스한 맛이 좋다. 멸치볶음을 먹었던 엄마처럼 김을 먹었던 아이처럼 나도 단순함에 기대는 중이다.




더하는 것보다는 빼기가. 꾸미기보다는 단조로움이. 다채로움 보다는 심플함이 좋아진다. 보기에 그럴듯한 걸 이루어내고자 열심히 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흐름을 따라가는 게 더 낫다. 온몸에 힘을 주고 전력질주 하다 보니 지치고 무력해져 번아웃이 오게 되더라.



언제부터인가 글쓰기가 그랬다. 남들의 반응에 따라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버거웠다. 더 잘 쓰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예쁘게 꾸민 글을 쓰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잠시 글쓰기를 쉬었다. 정말 글을 쓰고 싶은지, 쓴다면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대신 책을 읽으며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는 여행을 떠났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라면 어떤 글을 쓸지 머리에 그려보았다. 얼마 전부터 매일 짤막하게 글을 쓰는 습관을 시작했다. 멋진 문장으로 쓰려하기보다 솔직하고 진실함을 써 내려가려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담아.








작가란 단어는 동사입니다

오늘 글을 썼다면 당신도 작가입니다

<작가 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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