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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Dec 03. 2018

아메리카 대륙 캠핑카 여행을 시작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알래스카 대륙 종단 여행

열 손가락을 죽 펴본다.


손가락들은 상대적으로 아직 젊다. 연필로 글씨를 써본지는 오래되었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들을 오므렸다 펼쳤다 몇 번을 반복해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마음속에 담기는 것들을 손가락까지 전달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지 않은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십 년 전,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을 때부터 글을 썼다면.

영상 제작일을 하면서 좌충우돌했던, 아르헨티나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삽질했던, 현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울고 웃었던 나날들을 모두 글로 기록했다면.


지금쯤 글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기록에 인색했던 것은, (수 십 개의 이유와 핑계를 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유일하게 후회스러운 일이 되었다. 2년간의 여행을 앞둔 지금, 이 시간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을 두고 후회하는 일이 될 것만 같아 이곳에서 끄적거림을 시작하려 한다.


라이프 스타일 전환 <1> 도시에서 숲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살면서 방송 제작일을 했었다. 한국에서 촬영팀이 올 때는 코디로 참여하거나, 국제 뉴스를 다루는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에 영상을 제작해서 보내는 일을 하며 지냈다.  


우리가 살던 이십 평 정도의 아파트는 벨그라노라는 동네에 있었는데, 주변에 공원이 많고 교통이 편한 데다 아시안 식재료를 살 수 있는 중국촌이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지역이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도시생활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아들은 4킬로그램의 거구(!)로 태어나 한 살 반쯤 되었을 때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저녁에 특히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아래층 역시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었는데 아들이 조금만 걸어 다니기만 해도(덩치 때문에 걷기만 해도 쿵쿵하는 소리가 났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아랫집 남자는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무 빗자루를 가지고 천장을 딱딱딱 때렸다. 그 딱딱 소리가 나면 "우리 애들은 잘 시간이니 조용히 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했고, 뛰고 노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해야 했다.


앞집에는 결벽증 이웃이 살고 있었다. 오가며 간단한 안부 인사 정도만 하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여자가 문을 두드렸다. 엘리베이터 앞 바닥에 껌이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껌을 흘릴 일이 없으니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거였다. (두 살 된 아이에게 껌을 씹히는 한국 엄마도 없다고!!) 결국 내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새끼손톱만한 얼룩을 지우고서야 마무리되었다.


큰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두 살 때부터 동그라미를 그리며 입으로 부릉부릉 소리를 냈다. 자동차 바퀴를 그리는 것이었는데, 그 후로도 반년 동안 아이는 자동차 바퀴만 주구장창 그렸다. 아이의 예술세계에 영감이 된 첫 사물이 자동차 바퀴라니. 집 밖을 나가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단연 차바퀴였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숲으로 이사왔지만 아이는 여전히 자동차를 주로 그린다 ㅎㅎㅎ;;;

우리 부부는 도시를 탈출하자는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외곽지역으로 집을 찾아 나섰다. 둘 다 방송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심에서 그리 멀리까지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동네가 좋으면 집값이 너무 비싸고, 집이 예쁘면 치안이 위험하고, 예산이 맞으면 마당이 너무 작거나 집이 너무 낡았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꿈에 그리는 집을 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 년 동안 집을 보러 다니기를 전전한 끝에 지금의 집을 만났다.


숲이 가득한 작은 마을에 지어진 나무집이었다. 집 앞에는 공원이 있어 아이들이 나와서 놀면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뜨개질을 하거나 마테차를 돌려마시며 수다를 떤다. 동화 같은 이곳에서 새롭게 적응하면서 (극단적인) 스트레스 없이 큰 아이를 키웠다. 이사 온 첫날, 남편은 "아랫 집에 고양이 사니까 뛰어다니면 안 된다!" 하고 농담을 하며 낄낄 웃었다. 뛰어다니지 마, 조용히 해, 매일 저녁 입에 달고 살던 그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유칼립투스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집이 생기고, 큰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그 사이 둘째도 낳았음) 편안한 날들을 보내며 살았다. 동네 엄마들과는 더없이 친해져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집에서 점심 먹고, 저 집에서 수영하고, 우리 집에서 간식 먹는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듯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편은 여전히 촬영일을 했기 때문에 간간히 시내까지 이동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그 정도는 즐겁게 감수하며 다녔고, 편집이나 후반 작업 같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많이 찾아왔다.




라이프 스타일 전환 <2> 나무집에서 바퀴 달린 집으로


한 칠 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큰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의뢰한 인터뷰를 촬영하러 갔었다. 인터뷰이는 클래식카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하는 부부였는데 여행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낳게 된 아이들이 넷이고, 둘에서 여섯으로 늘어난 가족은 모두 함께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부부가 처음으로 했던 여행이 바로 우수아이아에서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의 여정이었다. 두 사람이 쓴 책은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세계 여행자들의 바이블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큰아이는 미국에서, 둘째는 아르헨티나에서, 셋째는 스페인에서, 넷째는 호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여행자 가족을 촬영한 후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 둘 다 구체적으로 뭔가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저들처럼 모험을 해보리라, 아마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7년이 흘렀고, 그 사이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인내심도 단련했고(여행에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삶에 순응하는 태도로 살게 되었다. 어찌어찌 집을 장만했고(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어쨌든 지구 한 구석에 내 집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뭔가 해볼 만한 시점이 되었다. 그러던 우리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남편의 친구의 절친인 루카스와 레이는 미국으로 가서 삼 개월 동안 농장에서 일을 해 번 돈으로 캠핑카를 장만했다. 캠핑카를 타고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출발한 지 두 달 만에 임신을 했고, 서둘러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아이를 낳았다. 결국 캠핑카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소식이 우리 부부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가 캠핑카를 찾아 나섰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온 기회였지만, 조금 달랐다. 어쨌든 지금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결심을 해야 했던 것이다. 닷새 정도 둘이 손을 맞잡고 덜덜 떨면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폭포물처럼 쏟아지는 갖가지 두려움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해야 하는 여행에 대해 걱정이 먼저 밀려들었지만 결국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 대륙 남북 종단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결정한 여행 프로젝트가 되었다. 캠핑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 말고는 얼마 동안 여행할지, 어느 길로 여행할지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다. 대략 2년이라고 계획하고 있지만 그전에 돌아올지, 아니면 영영 길 위를 떠돌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알래스카까지 여행하는 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인터뷰했던 여행가 부부의 책 제목도 <네 꿈을 좇아라>였으니 말이다. 꿈이라는 말은 달콤하다.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할 여행은 '꿈'이 아니라는 것이다. 휴가도 아니고 휴식같은 여행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다른 방식의 일상을 택했을 뿐이다. 일상은 치열하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아닌 현실이다. 그 모든 일상의 복닥거리는 순간들이 길 위에 놓여있다.


그 순간들을 주워 모으려 한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으로서의 일상이 아닌, 한 조각 한 조각 공들여-치열하게-주워 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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