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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Apr 21. 2019

안락함이라는 덫

Bolivia, Samaipata

공동묘지에서 잔 것은 처음이었다.


주유소 담벼락에서, 절벽 위에서, 텅 빈 해변에서, 공원 주차장에서, 정말로 다양한 장소에서 밤을 보내봤지만 공동묘지에서까지 잠을 자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려 사마이파타(Samaipata)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고, 주차하기 힘들겠다’였다. 얇은 골목길은 소형차 두대가 지나가기에도 빠듯했고, 마을 전체가 산에 있다 보니 평평한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은 사마이파타에서 캠핑카를 세울만한 유일한 곳은 공동묘지라고 했다. 수도꼭지도 있고, 전기 콘센트도 있고, 며칠 동안 머물러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곳.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공동묘지에서 일주일을 살게 되었는데, 캠핑카 여행을 해 본 사람은 공동묘지가 의외로 머물기 좋은 장소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이곳 사마이파타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발도르프 학교가 있어서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학교 교장 선생님과 만남을 가졌고, 새안이는 일주일 동안 ‘산의 꽃’이라 불리는 산골 학교의 임시 학생으로 등교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 반복되는 리듬 있는 일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공감할 것이다. 친구 하나에 울고 웃는 아이들이란 걸 말이다.


그렇게 새안이는 학교에 다니고, 나는 한발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침마다 동네 시장으로 산책 가는 일과가 완성되었다. 신선한 과일 야채들을 양손 가득 사들고 공동묘지까지 도달하는 오르막 길은 숨이 차는데도 어딘가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이마에 닿을 듯 낮고 둥근 산들을 배경으로 오래된 집들이 듬성듬성 박혀있고, 그 앞에서 졸고 있는 강아지 곁을 지나다 보면, 이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일주일쯤 지나니 물탱크가 바닥났는데 수도꼭지까지 호스가 닿지 않았다. 매 끼니때마다 더러워진 식기들을 세숫대야에 쑤셔 넣고 공동묘지 안쪽 수돗가까지 가서 설거지 했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물 때문에 한 번은 움직여야되겠구만, 중얼거리며 유모차를 끌고 캠핑버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 끝의 노란 단독주택을 지나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정원을 정리하고 계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넓은 정원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캠핑카로 여행 중인 가족인데 차에 물이 떨어져서요. 혹시 물을 좀 채울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반색을 하며,

우리 집에 와서 샤워를 해도 돼요, 저기 뒤쪽에 방갈로가 세 채있는데 원하면 거기서 자도 되고요. 캠핑카도 여기 정원에 세우도록 해요, 밖에다 세우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와,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오또 아저씨의 정원에 세 들게 되었다. 여기 사마이파타에 와보니 캠핑카를 세울 곳이 정말 없더라, 빈 공간을 활용하면 여행자들이 많이 올 것 같다, 우리가 어플리케이션에 정보를 올리는 걸 도와주겠다, 남편과 내가 이야기하자 아저씨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당장 실행하자고 했다.


오또 아저씨는 끝내주는 추진력의 소유자였다. 우리 이야기를 듣자마자 즉시 인터넷을 설치하셨고, 여행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세탁기라고 하자 이튿날 바로 세탁기를 사 오셨다.


그런데 아저씨의 친절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오또 아저씨와 연인 관계인 아이다 아줌마는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부터 요리 실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셨다.

아이다 아줌마가 해주신 음식 이야기를 더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각설하고, 며칠 전 이 두 분과 함께했던 광란의 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에게 공동묘지를 추천해줬던 페데리코를 다시 만났을 때 오또 아저씨네 정원에서 머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페데리코는 턱을 한 각도 올려 드는 표정으로 아하, 가라오케! 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라오케?? 아닌데? 그냥 평범한 가정집이야.


오또 아저씨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바닥에 구부정하게 앉아 뭔가를 만지고 계신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가가서 보니 아저씨는 다름 아닌 마이크를 수리하고 계셨다. 마이크 -> 가라오케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저녁식사가 마무리되자 오또 아저씨는 과감한 동작으로 유리병 하나를 식탁에 턱 올려놓으셨다. 보드카였다.


아저씨가 정원으로 나가 따 오신 세 개의 레몬은 광란의 밤을 알리는 노란 신호탄이었다. 능숙하게 보드카와 레몬을 섞어 한잔씩 돌리시더니 곧바로 가라오케 프로그램을 작동시키셨다.


노래는 주로 아이다 아줌마의 몫이었다. 청량한 목소리와 수준급의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아줌마의 단독 콘서트가 몇 분간 이어지고 그 사이 보트카가 바닥났다. 이 순간을 기다리셨다는 듯 오또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유리병을 턱 하고 올려 보이셨다. 데낄라였다.


데킬라 장군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는 맥주 캔들이 주르르 호위하듯 놓였다. 레몬즙과 맥주와 테킬라와 탄산음료의 향연. 그것들이 섞이고 비벼지는 동안 오또 아저씨와 아이다 아줌마, 나와 남편, 그리고 함께한 다른 여행자 부부의 얼굴은 해맑게 변해갔다. 히히 웃었고, 헤헤 웃었으며. 깔깔 웃었다.


애들이 잘 자고 있는지 간간히 확인하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갈지자로 휘청거렸다.


결혼 9년 차인 우리 부부에게 이런 밤은 사실 처음이었다. 술을 꽤나 마셨다고 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그간 살짝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날 밤은 우리 남편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이크가 주어지자 발라드를 힙합으로 바꿔서 즉흥 랩을 하는 남편 때문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갑자기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들어와서 춤을 추기도 하는 것이었다. 헐.


데낄라와 맥주 군단이 비워질 무렵에는 급기야 남자 셋과 여자 셋은 한데 뭉쳐 어깨동무를 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볼리비아의 품에 안겨 얼싸얼싸 춤을 추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여행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가라오케 타임을 마무리하고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잠시 대화타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오또 아저씨와 아이다 아줌마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볼리비아에서 이런 친절과 애정을 받게 될 줄은,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가족같은 대접을 누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므로.

정말이지 희한하고 별난 밤이었다.  


아이다 아줌마는 그녀 특유의 보들보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고아와 과부와 외국인을 누구보다 먼저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은 따른다는 것이었다. 마이크를 떼고 말하는 것인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차랑차랑 울리고 있었다.


여행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은 참 가지가지다. 그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짧은 우정을 나눠봤고 아쉬운 작별도 많이 해보았지만 이번 오또 아저씨, 아이다 아줌마와의 애정의 깊이는 남달랐다. 벌써부터 이별할 것이 걱정되었다.


가라오케 이후에도 우리 모두는 매일 다같이 밥을 해 먹으며 식구처럼 지냈다. 모든 것이 안정된 느낌, 우리를 감싸주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안락함, 여행자에게 이런 안락함은 어쩌면 독이다.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마이파타(Samaipata)에 와서 주저앉은 외국인들을 수없이 만났다. 이틀을 예정하고 여행을 왔다가 일주일을 머물고 한 달을 머물다가 결국엔 눌러 살게 된 이방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별다른 관광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작은 도시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결국 좋은 사람들이었다.


떠나기 싫다.

이 안락함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

아이다 아줌마가 해주는 음식을 며칠 더 먹고 싶다.

학교에 다니며 행복해하는 아들의 모습을 더 보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되었다.

다시금 호기심과 긴장감을 장착하고

용감하고 무쌍하게

길을 떠날 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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