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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Apr 03. 2019

볼리비아, 아 볼리비아

Bolivia, San Jose de Chiquitos

캠핑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애호하는 어플리케이션이 하나 있다.


바로 방랑자라고 불리는 ioverlander 앱이다.

(www.ioverlander.com)

캠핑장을 포함해서 차를 세우고 밤을 보낼 수 있는 장소들을 유저들이 직접 표기해 두었기 때문에 여행하는 동안 아주아주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볼리비아로 넘어오면서 이 앱을 통해 캠핑카 여행가들에게 아주 호의적이고 시설 또한 최고라고 호평이 나있는 한 호텔을 눈여겨봐 두었다.


산호세 데 치키토(San Jose de Chiquitos)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호텔에 어떤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후기를 남긴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원더풀을 외친 이유가 궁금했다.


밤늦게 도착한 탓에 호텔 주인은 자리에 없었지만 친절한 직원이 전화 연결을 해주었다. 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물교환을 제안했고, 홍보 영상을 만들어주고 5일 동안 호텔 뒤뜰에 캠핑버스를 정박하도록 허락이 떨어졌다. 남편은 삼시 세 끼에 세탁 서비스까지 제공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니 호텔 담장 뒤로는 병풍처럼 둘러친 산이 보이고, 널찍한 수영장에 뷔페식 아침식사까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홀에 있는 책꽂이에는 꽤 많은 양의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언제나 책에 굶주린 나로서는 입이 절로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볼리비아의 멋진 자연과 동식물에 관한 사진집들이 많이 있어 아이들이 보기에도 더없이 좋은 책들로 가득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책이 있었는데, 스쿠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 프랑스인 커플의 여행기였다.

Jerome이라는 이름을 통해 바로 이 호텔의 주인장의 책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곧이어 우리를 만나러 온 제롬 아저씨.


얼굴이 작고 하얀 전형적인 프랑스인 얼굴을 한 제롬 아저씨는 몇 년 동안 스쿠터 여행을 한 여행자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성 호텔 주인다운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스쿠터 여행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와서 호텔을 지은 지도 벌써 십 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롬 아저씨는 진작부터 호텔 홍보 영상을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현실화를 못했다며 우리가 짜잔 하고 나타난 것에 대해 굉장히 흡족해했다. 홍보 영상에 대한 구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듯, 내일부터 촬영을 할 곳들이 여러 군데 있으니 준비하란다. 호텔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의 관광지까지 아우르는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특별히 주문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제롬 아저씨의 특별 호위를 받으며 경치 좋은 전망대와 주변 유적지까지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다음 날에는 이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집을 하나하나 방문했다.


전통 탈을 만드는 피타고라스 아저씨의 집.


어린 시절부터 피타고라스 정의를 잘 알아서 평생  피타고라스라는 별명으로 살고 있는 분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목공예, 전기기술, 배관기술, 요리,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배웠고 결국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 장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새안이는 탈 깎는 작업을 조금 맛보더니 피타고라스 아저씨의 제자가 되고 싶다며 졸라댔다.


수공예 천을 만드는 포시바의 집.


씨실과 날실을 하나하나 엮어가며 옷감의 무늬를 자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도 해볼래요

볼리비아 전통 빵을 만드는 후아니따의 집.


역시 먹는 아이템이 빠질 수 없다. 볼리비아인들의 주식이나 다름없는 유카(만디오카)를 으깬 것에 쌀가루와 치즈를 섞어서 진흙 가마에 구우면 볼리비아식 쌀빵이 완성된다.

쌀빵과 함께 마시는 전통차가 있는데 특이하기 짝이 없었다. 일명 숯 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레몬잎에 설탕을 뿌리고 갓 구워진 숯을 넣어 설탕이 탈 때까지 섞어준다. 달고나 냄새가 날 때까지 설탕을 태운 다음 끓는 물을 넣고 걸러서 마시는 차이다. 의심 어린 마음으로 일단 맛을 봤는데 의외로 맛이 있네? 그런데 숯을 넣고 비벼서 차를 만들면 발암물질이 나오는 게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바스톤의 집.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곳이다. 축제에 쓸 양초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 축제에 입을 옷과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마을회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마침 양초 만드는 시연을 하고 있었는데, 초를 만드는데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돼지비계와 초가루를 끓인 물을 실에 부어서 여러 번 식히고 굳혀서 만드는 전통 제조법이라고 한다.

산 호세 데 치키토스(San jose de Chiquitos)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볼리비아 내에서도 기독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에 속해 있다. 볼리비아는 과거 스페인의 신세계 개척 시기에 페루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크게 거덜 난 나라 중의 하나다. 거덜 났다는 표현이 좀 상스럽지만 유럽 침략자들이 이곳에서 쓸어간 은이며 금이며 각종 지하자원의 양을 생각하면 더 과한 말을 써도 마땅할 지경이다.


스페인 통치자들은 포토시(potosi)의 은광에 더불어 이 지역에는 금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점령 초기에는 천주교 전파에 특히 공을 들였는데, 이 주변에 지어진 삼백 년도 넘은 교회들을 보면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진다. 신앙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볼리비아 사람들은 이제는 서양 종교에서 파생된 문화를 자기 문화로 여겨 그것을 보존하고 있다.

화려한 성당

전통초를 만드는 것만 해도 그렇다. 볼리비아 토속적인 축제 문화와 결합이 되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초를 만드는 천주교 문화의 그것을 마치 자신들의 전통인 듯 소중히 여기고 있는 모습이 나는 어쩐지 안쓰러웠다.


어쩌면 문화와 전통이란 이렇듯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그들의 문화이며 어디까지가 우리의 전통인지, 그 경계가 어디인가 말이다.


프랑스인 여행가 제롬씨의 사연


아, 우리의 제롬 아저씨 이야기를 하다가 옆으로 샌 것 같은데, 이 작은 덩치의 용감한 여행가는 어쩌다 볼리비아에 정착해 살게 된 것일까. 세계 곳곳을 다녀 본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했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란 말인가 이곳이?


나는 궁금해서 입이 달싹거렸다.


제롬 아저씨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는데,


저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의 붉은 땅과 산의 모양을 보는 순간
딱 마음에 들었어요.


스쿠터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가 책을 쓰고 수많은 강연을 다니며 유명세를 탔던 그는 홀연히 볼리비아로 돌아와 이곳을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단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마을에 당도했고,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마침 적당한 땅을 판다는 소식을 접했고, 어찌저찌 땅을 구입해 호텔을 지었다.


물 흐르듯 흘러간 그의 십 년이 자연스러운 그의 미소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볼리비아에 대한 얄궂은 선입견으로 가득했다가 조금씩 이 나라의 진면모를 발견해가는 나이기에 그의 선택이 전혀 과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볼리비아에는

야만과 문명이,

전통과 현대성이,

무질서와 질서가,

무지막지하게 섞여 노상에 펼쳐져 있다.

그 부자연스러운 섞임을 숨기려 하지 않고 드러내 보이는 볼리비아, 아직까지는 정체를 모르겠다.


그런데 은근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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