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zil, Pantanal
보니또(bonito)를 떠나 브라질과 볼리비아의 국경도시 꼬룸바(corumbá)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정글로지(Jungle Lodge)라는 이름의 호텔을 발견했다. 정글? 호기심 자극하는 단어구만, 한번 들러볼까나?
브라질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서 내심 아쉬운 마음이 크던 차였다. 한 군데 더 들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너덜너덜 여기저기 구멍이 생긴 고속도로를 조금 달리다 비포장도로로 진입해서 십 킬로미터 정도를 더 들어갔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강이라고 하기엔 얕은 물, 그 위를 빼곡하게 채운 부레옥잠(추억의 생물교과서 단어!)과 수상식물들이 잔디밭처럼 뭉실거리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폭이 좁은 다리를 건널 때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걸어가듯 운전해야 했는데, 그 덕분에 물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새끼 악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 드디어 정글에 가까워진 것인가? 정글=악어
정글 로지에 거의 다달았을때, 길이 좁아지는 것을 보고는 남편이 걸어서 다녀오겠다며 나섰다. 우리는 보통 호텔에 방문해서 홍보영상을 제작해주고, 필요한 것들과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 이 호텔의 경우 여러 가지 투어와 액티비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제공받아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삼십 분 정도 흘렀을까, 모기에 (농담 아니고 진짜) 사십 방 이상 물려 울긋불긋한 얼굴을 하고 남편이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솔직히 그냥 가던 길 가자는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지만, 정글 탐험이라는 단어가 자극하는 말초적 순수함이 그 말을 막았다(우리는 이후 나흘 동안 모기 밥이 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호텔 매니저는 우리 방문을 환영했다. 홍보영상을 만들어주고, 나흘 동안 삼시 세 끼, 보트 탐험, 피라냐 낚시, 카약, 사파리 탐험, 야간 동물탐험 등의 투어 프로그램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삼시 세 끼’ 부분에서, 큰 아이는 ‘피라냐 낚시’ 부분에서 각자 환호성을 외쳤다.
캠핑버스를 정박하고 밥때가 되어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이상한 발음으로 포르투갈어 인사를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웬걸, 브라질 사람은 없었다. 이탈리아인 가족, 독일 아줌마 단체, 체코인 가족, 덩치 좋은 영국 청년들, 미국인 한 명, 벨기에인 한 명, 슬로베니아인 부부까지 죄다 외국인들이었다.
이곳 판타날은 세계에서 가장 큰 늪지대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도 등재된 국제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였던 것이다. 22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면적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다양성으로 따져도 세계 으뜸이라고 한다.
자연 자원이 다소 부족한(?) 유럽 사람들에겐 광활한 늪지대에서 수십 종의 새들과 동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판타날 지역 여행 코스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한다.(이곳에서 만난 독일인의 의견임) 물론 자연 자원이 풍부한(!) 아르헨티나인의 눈에도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단지 이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이런 엄청난 늪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뿐.
정글 모기떼의 습격은 가히 압권이었다. 긴팔 긴바지를 가까스로 뒤져 꺼내 입고, 모기퇴치 스프레이로 온몸을 도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기들은 제 소임을 다 했고, 우리는 순식간에 울긋불긋 물들었다.
첫날의 프로그램은 보트탐험이었다. 모터로 달리는 보트의 속도를 모기들이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야!!! (기대감에 서두른 나머지 아주아주 중요한 물건 한 가지를 챙기지 못한 나)
오전 7시 반. 보트에 탑승
오전 8시. 가이드 아저씨는 보트의 속도를 리듬감 있게 조절해가며 다양한 새들과 악어들, 쥐과에 속하는 커다란 까르핀쵸, 원숭이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오전 9시. 까르르 거리며 안겨 있던 막둥이가 슬슬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공갈젖꼭지를 물려주면 곤하게 잠들 시간이다. 그런데 공갈이가 없다₩&@?!!!!
오전 9시 반. 보트가 떠나갈 듯 울어대며 공갈이를 요구하는 막둥이, 움직이는 배에서 뛰어내리겠다며 버둥거린다. 지옥의 한 시간.
오전 11시. 강가에 보트를 정박하고 모두들 강물에서 릴랙스 타임. 배경에는 아기 울음소리. 막둥이 울음소리에 비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막둥이와 비버들 중에 누가 이길까.
오전 12시. 막둥이는 두 시간을 넘게 울어대고도 기운이 남은 듯하다. 배에서 허둥지둥 내리며 함께 탔던 사람들에게 아임 쏘리 사죄의 말을 전했다.
둘째 날엔 피라냐 낚시였다. 첫째 날 크게 디인 나는 피곤에 쩔어 퍼져 있다가 강변으로 나가니 큰 아이가 피랴냐를 들고 뿌듯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에게까지 공포를 주는 무시무시한 이빨과 위엄은 한줄기 낚싯줄에 매여 전락해버리고, 그날 피라냐들은 밀가루 반죽을 뒤집어쓴 채 기름에 튀겨져 저녁 식탁에 올랐다. 나는 사진만 냅다 찍고 어쩐지 먹지는 못했다.
셋째 날엔 사파리 투어와 야간 동물탐험이 있었다. 담당 가이드는 우리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와 긴팔과 긴바지 그리고 모기 스프레이를 단단히 준비하라고 했다. 그날 가는 지역에 모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모기가 많다고요? 그럼 여기는 모기가 별로 없다는 뜻인가요? 가이드는 씩 웃으며, 거기에 비하면 여긴 모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막둥이를 데리고 가서 보트 투어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려던 나는 그냥 호텔에 남아있겠다며 정색했다.
결국 남편과 큰애 둘 좋은 일만 시키고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악어떼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