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uguay, Parque nacional Santa Teresa
여행지라고 마냥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부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은 되도록 자제하고 싶지만, 정말이지 해변이 싫다.
1월의 우루과이는 한여름, 내륙으로 갈수록 습해지고 햇살이 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휴가철을 맞은 사람들은 대부분 해변에 모인다. 뿐따 델 에스테(Punta del este) 같은 고급 휴양지에는 주로 돈 많은 외국인들이 터를 잡고 있지만, 그 중심 지역을 벗어나 북쪽 해안가로 이동하면 한적하고 자연은 더 자연스러우며 물가도 훨씬 저렴하다.
현재 우리 가족은 브라질 국경에서 멀지 않은 산타 테레사 국립공원에서 머물고 있다.
국립공원에는 등산 코스도 있고, 스페인 사람들이 이백 년 전에 쌓았다는 성벽도 있고, 동물들이 활보하는 레크리에이션 공간도 있고, 지역 식물 온실 같은 특이한 볼거리도 있지만, 더운 날씨에는 단연 해변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길을 향한다.
바다와 모래와 해를 사랑하는 큰아이는 지지라며 모래에 손도 안 대던 동생을 해변 신세계 놀이터에 입문시켰다. 모래에 앉힐라치면 꼬물꼬물 한 발가락들을 최대한 오므리며 울상짓덧 꼬맹이가 일주일 만에 해변 배테랑이 되어 해맑은 웃음을 날리며 헤집고 다니신다.
남편도 자칭 전직 해안 안전요원 경험자로 수영에 남다른 재능이 있으니 여느 아르헨티나 사람들만큼은 해변을 사랑한다.
그 와중에 뭐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나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듯 행복한 얼굴로 해변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쩐지 불편한 얼굴을 하고 발가락을 오므리고 있는 사람은 이 몸뿐인 듯하다.
일단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싫다.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모래도 별로다. 아무리 더워도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건 정말 진저리 난다. 게다가 수영도 못하니 바닥도 보이지 않는 움직이는 물에 들어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가슴골은 그렇다 치고 양 엉덩이의 대부분의 면적을 훤히 드러내야 하는 비키니는 엄두도 못 낸다. 둘째를 낳고 일흔 노인처럼 쭈글거리며 축 쳐진 뱃살을 햇살 아래 훤히 드러낸다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한다. 정작 관중들은 내 뱃살이 어떻든 아무 관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 널따란 해변에 이 몸이 즐길만한 요소는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이 가련하다. 엄마를 찾지 않는 두 아이를 멀찌감치 관망할 수 있다는 그거 하나는 뭐 반길 만하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여행을 주로 산으로 갔다. 산이거나 절이거나 아니면 절이 있는 산, 계곡물이 폭이 좁게 흘러내려 웅덩이를 이루는 곳, 그 계곡물이 시냇물이 되고 강과 만나는 곳, 그런 곳에 주로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물에 발을 담가도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곳, 그 물을 마신다 해도 짜지 않아 달게 넘길 수 있는 곳, 가재를 쫓고 다슬기를 주워 오후 늦게 라면을 끓이는 냄비에 퐁당퐁당 하던 곳. 그런 곳들이 나의 유년시절 휴가지였던 것이다.
바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바다에 대한 추억이 없다고 해변을 싫어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트라우마라도 있는 걸까.
아이들이 왁자지껄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엉덩이의 최소한의 면적으로 몸을 지탱한 채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자전거로 한참을 달려온 탓에 피곤이 몰려오고 뜨거운 햇살은 마치 건식 사우나를 상기시킨다. 깔아놓은 천 위에는 막둥이가 흘린 모래가 보이지만 그것을 털어낼 기운도 없다. 빵빵한 가방을 대충 북쪽으로 놓고 손으로 툭툭 건드려 베개 모양을 만든 다음 눕는다. 챙 넓은 모자를 얼굴에 덮고 최소한의 숨구멍만 남겨본다. 팔짱을 끼면 그래도 맨살이 모래에 닿는 것은 면할 수 있다.
이 몸이 해변에서 즐길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낮잠이었던 것이다.
일단 피곤함이 어느 정도 누적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온 몸의 체중을 모래 위로 내려놓으면 수많은 모래알들이 작은 손이 되어 내 몸을 떠받힌다. 내리쬐는 햇살을 이불 삼아 덮으면 따끈따끈한 보온매트 느낌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 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발가락부터 코끝까지 살랑거리며 한번 훑어주면, 뜨끈함과 서늘함이 궁합을 이루며 낮잠 파라다이스를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십 분쯤 지났을까.
모자로 덮어쓴 탓에 나의 행복한 얼굴이 미처 보이지 않았던지 남편이 나를 깨운다.
여보 여보 당신이 좋아할 만 거 찾았어!
이 사람아, 나 지금 낮잠 천국인 거 안 보여?
짜증이 확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큰 아이가 코 앞으로 거무스름한 것들을 내밀어 보여준다.
엄마 이거 집에 가서 먹자!
홍합?!
짜증을 표현하려던 내 얼굴에서 갑자기 빛이 나면서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털어냈다. 남편과 아이는 이런 엄마의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 기세 등등하게 앞장섰다.
큰 바위들이 무심하게 내던져진 곳에는 홍합이 새까맣게 자라고 있었다. 홍합의 먹이가 되는지 군데군데 미역들도 솟아났고 홍합 사이에는 바다 골뱅이도 함께 엉켜있는 것이 보였다.
어린 시절 들에서 냉이를 캐던, 계곡에서 가재를 찾던, 강에서 다슬기를 줍던 그 매의 눈이 오랜만에 번득였다. 순식간에 한 봉지 가득 홍합을 따냈다.
남편은 미친 듯이 홍합을 따는 나를 꼭 안아주며 보람 있다는 듯 말했다. 우리 한국 마나님~~
여행을 가서도 꼭 잣이든 밤이든 두릅이든 냉이든 쑥이든 감이든 털어오는 한국 아줌마의 피가 내 안에 고스란히 흐르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래 뭔가 소득이 있어야 알찬 여행이지. 저녁거리 건졌네 에헤라디야
집으로, 캠핑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세 사람의 자전거가 샤워장 앞에 멈춰 섰다. 뜨듯한 물이 나온다는 샤워장의 혜택을 놓칠 수는 없음이다. 다섯 시에 온수가 나온다니 십 분만 기다리면 오늘 쌓인 피곤과 땀을 훨훨 날려 보내고 개운하게 돌아갈 수 있겠다.
룰루랄라 옷을 벗고 들어갔지만 온수는커녕 미지근한 물도 안 나온다. 여기저기서 물이 차다는 말들이 들려올 뿐 그 누구도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한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지던 구월 말까지 온수를 틀어주지 않았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아이들은 기숙사 사감 선생님한테 뜨거운 물 틀어주세요 호소하기 일쑤였지만 정말 추운 시월 전까지는 어림도 없었다.
지리 담당이었던 고옥숙 선생님이(선생님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사감이었던 어느 날 애들이 온수를 요구하자 선생님은 차분하고 시니컬하게, 찬물을 몸에 적시기 전에 비누를 온몸에 먼저 바르세요 그러고 나서 물을 틀고 휘리릭 헹구면 됩니다 라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걸 지금 대안이라고 얘기하시는 겁니까, 당시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지금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할 때마다 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선 비누, 후 냉수 방식으로 눈 깜짝할 사이 샤워를 마무리했다. 개운함은 매한가지다.
이른 저녁으로 홍합을 데쳤다. 바다 골뱅이를 초장에 찍어 먹으니 여느 횟집 부럽지 않은 맛이 났다.
그런데 홍합은 심술이라도 부린 듯 죄다 모래를 잔뜩 머금고 있어 당최 씹을 수가 없었다.
조개류는 소금물에 하루를 담가 모래를 뱉어내게 한 후에 요리를 하면 좋다는 가정 교과서의 가르침은 모래알이 입안에서 댕글 거린 후에야 떠올랐다.
역시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만 잘 활용해도 평생을 지혜롭게 살기에 충분한 것을.